길섶에서
[길섶에서] 봄꽃 단상/구본영 논설고문 l 2015-04-22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봄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화사하게 다가오는 걸까. “세상의 풍경은 모두 황홀하다/햇살이 노랗게 물든 유채꽃밭이며/유채꽃 속에 온몸을 들이미는 벌들까지/…/내가 다가가는 사람이나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 모두 미치게 황홀하다” 한 지인이 이메일로 보내온 허형만 시인의…
[길섶에서] 가양주(家釀酒)/문소영 논설위원 l 2015-04-21
집에서 빚은 술을 가양주(家釀酒)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의 술로 가양주를 내야 했으니 양반집에는 전래하는 술 빚는 법이 따로 있었다. 집집이 장맛이 서로 다르듯 술맛도 각기 달랐을 것이다. 쌀이 귀하던 1960~1980년대 쌀로 술 빚는 것을 정부가 금했는데, 엄마는 다락방에서…
[길섶에서] 하이패스/서동철 논설위원 l 2015-04-20
물건을 사면 거스름으로 받은 동전이 남는다.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게 성가셔 종이컵에 던져 둔다. 시간이 지나면 제법 묵직하게 쌓이는데, 고속도로를 타야 할 때면 이 동전 뭉치를 생각해 내곤 한다. 집 근처 외곽순환고속도로는 특히 통행료를 받는 곳이 많다. 같은 액수라도 지폐 대신 동전을 내…
[길섶에서] 여백/문소영 논설위원 l 2015-04-18
시인 최영미의 아파트는 책도 가구도 없이 텅 비었는데 그 빈자리에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의 포스터가 스카치테이프로 네 귀를 대충 붙인 채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7년 초여름이다. 최 시인이 전해에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등 유럽의 미술관…
[길섶에서] 내비게이션/진경호 논설위원 l 2015-04-17
스마트폰 기능 가운데 신통방통한 게 내비게이션 앱이다. 가는 곳이 어디든 골목길까지 척척, 도착 시간까지 정확하게 그것도 거의 공짜로 알려주니, ‘나비’ 이놈 참 기특하다. ‘나비’ 덕에 초행길 스트레스와 지도책 펴놓고 아내와 벌이던 실랑이는 옛 얘기가 됐다. 어쩌다 일러준 길을 놓쳐도 목…
[길섶에서] 신발 욕심/문소영 논설위원 l 2015-04-16
미국 드라마 ‘섹스앤드더시티’의 허영심 많은 캐리도 아니지만, 여성용 신발이 신발장에 가득하다. 한 번 신고 신발장에 넣어 둔 신발들이다. ‘기자는 발로 취재한다’는 생각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신화 같지만, 외근이 기본인 기자는 사무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걸어야 한다. 여성용 신발은 브…
[길섶에서] 좌고우면/최광숙 논설위원 l 2015-04-15
‘좌고우면’(左顧右眄)은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앞뒤를 재고 망설이는 태도를 말한다. 요즘 이 단어가 유행어가 될 듯하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맡은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은 그제 첫 브리핑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면서 좌고…
[길섶에서] 어떤 ‘삶의 질’/서동철 논설위원 l 2015-04-14
통영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름부터 역사의 향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은 데다 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고장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어느 해 통영국제음악제를 위해 찾았을 때 남망산 아래 부두의 골목 장터에서…
[길섶에서] 민심/최광숙 논설위원 l 2015-04-13
지난 주말 집 인근 공원의 정자 쉼터에서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두 분이 정자에 앉더니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죽으려는 사람이 돈 준 것 거짓말 하겠어?” “우리는 (선거 때) 설렁탕 한 그릇 잘못 얻어먹어도 수십 배 물어내는데, 몇억씩…
[길섶에서] 공직자의 수준/최광숙 논설위원 l 2015-04-11
얼마 전 택시를 탔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핸들을 잡으셨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을 지나치는데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3·1절 전에 청사 벽면에 대형 태극기가 걸렸는데 태극기의 오른쪽 위 귀퉁이가 말려 보기가 흉했단다. 그래서 행정자치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태극기 모양을 바로잡으라…
[길섶에서] 회장님 콘서트/최광숙 논설위원 l 2015-04-10
4년 전 지인의 초대로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디너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당시 모 방송사의 ‘나는 가수다’가 처음 나와 인기가 한창 있었다. 마침 이날 콘서트에 그 프로에 출연했던 가수 등이 줄줄이 나와 흥을 돋워 모처럼의 즐거운 저녁 나절을 보냈다. 한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을 부른 …
[길섶에서] 무정한 손님/서동철 논설위원 l 2015-04-09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음식점 골목이 형성되면서 닭강정집이 하나 생겼다. 주인 할머니가 직접 만드는데 값은 조금 비싼 듯했지만 좋은 재료를 쓰는 데다 솜씨도 있는 듯 깔끔한 모양에 맛도 좋아 대학생 딸아이가 특히 즐겼다. 하지만 배달을 하지 않으니 별 수 없이 직접 가서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길섶에서] 블루베리/문소영 논설위원 l 2015-04-08
늦어도 4월 초에는 씨감자를 넣어 주어야 6월 21일 전후로 하지 감자를 수확할 수 있다. 도시 농부를 몇 년 동안 해 보니 농작물은 싹을 내고 자라 수확하는 데 대체로 100일 안팎의 날짜가 필요하다. 김장 배추도 100일 배추가 가장 맛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얼마 전 씨감자를 텃밭에 넣어 주면서…
[길섶에서] 일회삼매이상불가/서동철 논설위원 l 2015-04-07
시·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절의 화장실로는 순천 선암사 측간(厠間)과 영월 보덕사 해우소(解憂所)가 있다. 모두 산지 사찰의 지형적 특성을 이용해 누각식으로 지었다. 용변을 보는 곳과 배설물이 쌓이는 곳의 고저 차이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선암사에는 ‘정월 초하루에 힘을 주면 섣달그믐에 떨…
[길섶에서] 우정과 부패의 차이/최광숙 논설위원 l 2015-04-06
친구들과 사진관에 가서 함께 사진 찍는 것으로 ‘우정’을 확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기가 귀하던 때 얘기다. 중학교 시절 친구가 부산으로 전학을 가게 되자 섭섭한 마음에 다른 친한 친구와 같이 사진관에 가서 찍은 기념사진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단발머리에 카메라 앞에서 억지웃…
[길섶에서] 노년의 꿈/문소영 논설위원 l 2015-04-04
은퇴하면 그림책 작가가 되길 희망한다. 3~5세를 대상으로 하는, 글은 거의 없고 그림은 많은 그림책을 아주 좋아한다. 40대 초반에 크게 낙담한 적이 있다. 투자를 해 봤자 결과가 별 볼 일 없는 늙다리가 됐구나 하는 자각이 찾아왔다. 신규투자를 해 봤자 매몰비용인 게다. 금광을 발견하고 캐내는 …
[길섶에서] 세상의 진달래꽃/문소영 논설위원 l 2015-04-03
4월을 여는 첫날이자 만우절에 거리를 어슬렁거리는데 울긋불긋 봄꽃들이 만개해 맑은 시야에 와락 들어왔다. 아파트 담벼락으로 개나리가 노란 폭포수를 이루고 있고, 목련도 크고 넓은 흰 꽃봉오리를 활짝 열었다. 가로수 벚꽃들도 연분홍색 꽃망울을 잔뜩 올린 모습이 겨울을 잘 견디어 대견했다. 그…
[길섶에서] 조미료 안쓰는 반찬가게 l 2015-04-02
어린 시절 웬만한 집의 부엌 찬장에는 인공 조미료 한 봉지씩은 다 있었다. 국이나 찌개, 조림 등에 조미료를 솔솔 뿌리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앞치마를 입고 머리에 수건까지 두른 한 여배우의 조미료 광고는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조미료는 그 시절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하…
[길섶에서] 봄/진경호 논설위원 l 2015-04-01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명체가 갖기 시작한 건 2억년 전 이 땅에 포유류가 등장하면서부터라는 얘기를 유명 정신의학자에게서 들었다. 쥐처럼 보잘것없이 작은 포유류가 거대한 공룡과의 진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몇 가지 가운데 중요한 것이 새끼를 알 대신 자기 배 속에서 키워 낳는 능력이…
[길섶에서] 전주 콩나물 국밥/문소영 논설위원 l 2015-03-31
술을 푼 다음날 해장에 좋은 콩나물 국밥은 ‘전국구’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주비빔밥과 함께 전주의 명물 음식이다. 며칠 전 서울 마포에서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달걀을 퐁당 넣은 펄펄 끓는 ‘전주 끓이는 식 콩나물 국밥’에 익숙했지만, 호기심 천국답게 ‘전주 남부시…
[길섶에서] 잡고기의 최후/서동철 논설위원 l 2015-03-30
붕어 낚시를 자주 다니던 시절 지렁이 미끼를 끼우면 다짜고짜 덤벼드는 게 꾸구리였다. 색깔은 거무튀튀하고 무늬는 얼룩덜룩하니 그리 아름답지 않은 민물고기다. 손가락 크기를 넘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이 바늘을 배 속 깊숙이 삼켜 대니 결코 반가울 수 없다. 하지만 낚시터가 아니라 매운탕 집이…
[길섶에서] 아버지 손맛/서동철 논설위원 l 2015-03-28
1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다. 경기도 평택에 유명세를 떨치던 냉면집이 있었다. 남쪽으로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면 아무리 피곤해도 이 집에서 냉면을 먹곤 했다. 고속도로 나들목과 평택 시내 냉면집 사이의 거리가 웬만했으니 동행한 동료들은 극성깨나 떤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렇게 즐겨 찾았…
[길섶에서] 도둑 없는 마을/최광숙 논설위원 l 2015-03-27
요즘 시위 등으로 청와대 주변의 불심검문이 강화됐다는 얘기를 들으니 청와대 바로 옆에서 살던 때가 생각난다. 1980년대다. 어느 날 우리 집을 방문한 친구가 “야, 친구 집에 놀러 오는 데도 신분증을 갖고 다녀야 하냐”고 한참 열받아 했다. 낯선 사람이 출동하자 집 앞 골목길에 서 있던 사복 경…
[길섶에서] 맨손 체조/최광숙 논설위원 l 2015-03-26
신문을 보니 정계의 한 유력 인사가 ‘좋아하는 운동’으로 맨손 체조를 꼽았다. 그걸 보고 혼자 피식 웃었다. 초등학교 시절 ‘따라라라란 ~’ 하는 음악 소리와 함께 힘찬 구령 속에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하던 국민 체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강제로 운동장에 끌려나와 하던…
[길섶에서] 텃밭 불놀이/문소영 논설위원 l 2015-03-25
3월 초에 언론인 도시 농부 몇몇이 만난 자리에서 토종 씨앗을 선물받았다. 작두콩과 조선오이였다. 작두콩은 콩꼬투리가 작두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리 부르는데, 강낭콩같이 울긋불긋한데 4배 정도 크기다. 개량종인 일명 ‘다닥이 오이’가 수확 시기를 놓쳐 노각이 되면 맛이 없지만 조선오이는 노각…
[길섶에서] 변화와 저항/정기홍 논설위원 l 2015-03-24
점심시간에 짬을 내 온라인 강의를 들은 지 꽤 오래됐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조직의 변화, 즉 혁신에 관한 강의들을 선택했다. 다 아는 것 같고 고리타분하고 딱딱하리라던 강의 내용에 재미를 톡톡히 붙였다. 일상을 지지고 볶고 지내는 곳인데도 모르고 지냈던 것에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직원은 늘…
[길섶에서] 봄동/최광숙 논설위원 l 2015-03-23
이른 봄 이맘때쯤 겨울철 잃은 입맛을 되살리는 음식을 하나 꼽으라면 봄동 겉절이다. 봄동을 사다가 손으로 쭉쭉 찢어서 간장과 멸치액젓, 고춧가루, 참기름 등을 넣어 겉절이를 해 놓으면 손이 저절로 가게 된다. 그냥 밑반찬으로 먹어도 괜찮지만 비릿한 생선을 먹고 봄동을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진…
[길섶에서] 영월 단상/서동철 논설위원 l 2015-03-21
강원도 영월에 가면 서부시장에서 메밀전병을 맛봐야 한다. 수십 곳 가게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특산물인 메밀전병을 경쟁적으로 부쳐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뛰어난 관광자원이다. 물론 영월을 찾는 여행자는 단종을 외면할 수 없다. 이 고장은 사실 숙부에게 목숨을 잃은 어린 단종을 기리는 거…
[길섶에서] 불황 속 가게들/정기홍 논설위원 l 2015-03-20
내수 불황이라지만 국밥집은 성업이다. 퇴근길에 가끔 들르는 순대국집은 전에 없이 북적인다. 두어 달 전에 국밥과 술값을 올렸다. 왜 올렸느냐고 말하는 이도 없다. 너나없이 지갑을 닫는 이면에 그 정도의 가격은 감내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 손님들이 이어지니 인상 작업은 성공작이 됐다. 주…
[길섶에서] 청와대 앞 검문/진경호 논설위원 l 2015-03-19
하루 두 번 청와대 앞을 차로 지난다. 매일 두 번씩 검문을 받는다는 얘기다. 청와대 근처에 사는 ‘죄’랄밖에…. 고급 승용차나 외제차는 건성으로 살피고 꼭 내 차만 멈춰 세운다는 푸념이 늘어가던 어느 날, 급기야 한 경찰관이 뒤틀린 심사를 긁었다. “어디 가십니까~?” “(청와대 옆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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