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길섶에서] 부메랑/김성수 논설위원 l 2014-12-19
“악법도 법이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단호했다. 지난달 5일 기자들과 만나서 한 말이다.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사고를 낸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과징금 부과로는 부족하며 운항정지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경쟁사 총수가 이런 속내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었…
[길섶에서] 셀프 탈출구/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2-18
군것질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시절에 젊은 이혼녀가 있었다. 들린 이혼 사유가 특이했다. “밥을 잘 안 먹고 과자 봉지만 잔뜩 쌓아놓고 먹어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혼한 것이 꼭 그것만은 아니었겠지만 다 큰 여자가 군음식 때문에 이혼을 당한 건 이해불가였다. 군것질을 세끼 밥 먹듯 …
[길섶에서] 털신/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2-17
옛날 할아버지가 겨울에 신던 검은 고무신은 갈색 털이 달린 털신이었다. 어린 마음에 봄날 털갈이하는 개털처럼 윤기 없고 푸석푸석한 인공 털이 달린 털신이 참 흉하다고 생각했다. 털신은 겨우내 할아버지 방 앞의 댓돌에 놓여 있었다. 가끔 등산을 갔다가 겨울철에 요사채를 지나다 보면 그 털신을…
[길섶에서] 3차 신경통/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2-16
어려서부터 두통이 심해 어지간한 수준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11월 말에는 급기야 오른쪽 관자놀이보다 조금 안쪽을 바늘로 꾹꾹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그 다음날부터는 오른쪽 얼굴 감각이 이상해졌다. 피부를 건드리면 면도날로 피부를 베는 듯이 예리한 통증이 나타났다. 통증으로…
[길섶에서] 나의 가장 오래된 것/김성수 논설위원 l 2014-12-15
며칠 전 광화문에서 모범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일흔이 넘은 노신사였다. “택시를 시작한 게 1964년 10월 ○○일입니다. 올해로 딱 50년이 됐죠.” 이어지는 말들은 더 놀랍다. “지금 이 차가 에쿠스인데 90만㎞를 뛰었어요.” 잘못 들었나 싶었다. “9만㎞가 아니구요?” 되물었다. “하하. 90만…
[길섶에서] 마카다미아넛/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2-13
맥주 마실 때 심심풀이로 먹는 땅콩과 초콜릿 덕분에 알게 된 아몬드, 31가지 아이스크림 중 하나인 피스타치오 외에 한국에서 견과류는 고유명 대신 견과류로 불린다. 그런데 낯선 마카다미아넛이란 이름이 대중화할 모양이다. 혀가 꼬이는 이름을 완전히 외울 지경이다. 원산지가 오스트레일리아인데…
[길섶에서] 달력/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2-12
한때 ‘인심’으로 통했던 달력의 이야기가 지금은 진부해졌다. 챙기는 사람도, 주는 이도 드물어 주고받는 정(情)도 자리에서 저만치 물러섰다. 식상한 은행 달력이라도 떡하니 걸려 있어야 세월 가는 걸 아는 세대여선지 달력의 퇴색은 아쉽고 허전하다. 달력의 생명은 ‘시간의 흔적’이 아니던가. …
[길섶에서] 하늘로 보내는 페이스북/손성진 수석논설위… l 2014-12-11
얼마 전 ‘○○○님이 오늘 생일을 맞습니다’라는 페이스북 안내 메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몇 년 전 운명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으로 들어가 올려진 글들을 읽어 보니 금세 이해가 됐다. 가족들이 계정을 지우지 않고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자가 첫돌이 되었…
[길섶에서] ‘단톡’ 스트레스/진경호 논설위원 l 2014-12-10
올해 초 페이스북이 ‘꼴불견 이용자 10대 유형’을 내놓은 바 있다. ‘베이그부커’(vaguebooker)가 대표적이다. 일부러 모호한 단어나 문장을 띄워 관심을 끄는, 일종의 ‘낚시꾼’이다. ‘사는 게 뭔지….’ 이런 식으로 앞뒤 다 자르고 단어 한두 개 올려놓고 끝이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눈총을 …
[길섶에서] 흥정과 뻥튀기/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12-09
정찰제가 제도화되지 않았던 수십 년 전 장터에서는 물건 값을 놓고 밀고 당기는 흥정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많이 깎아도 왠지 상인의 가격 뻥튀기에 바가지를 쓴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흥정의 기술은 사회생활에서의 협상 능력이나 연애에서의 ‘밀당’(밀고 당기기)으로 발전할 수 있…
[길섶에서] 삼박자/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2-06
밥집은 무엇보다 맛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음식값이다. 맛은 괜찮아도 호된 값을 치르고 나면 기분이 상한다. 우리 같은 서민만 그런 게 아니라 밥값 정도는 아끼지 않을 것 같은 친구들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세 번째로 이런 집에 독특한 역사나 이야기까지 있으면 발걸음은 더욱 잦아진다. 이…
[길섶에서] 망년회의 계절/구본영 논설고문 l 2014-12-05
곧 망년회(忘年會)의 계절이다. 이런저런 덕담과 건배사가 오가는, 흔한 풍경과 함께 말이다. 망년회의 사전적 의미는 한 해를 보내며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일 게다. 일본식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요즘엔 송년회라고도 부르지만. 누구나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길섶에서] 계절 장사/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2-04
우산과 짚신을 파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의 버전이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다. 두 아들이 동업을 하고 둘을 묶어 싸게 팔면 요즘 같은 불경기에 공치는 날이 없어 어머니의 걱정을 한결 던단다. ‘복(福) 우산’과 ‘건강 짚신’ 마케팅을 하면 떼돈을 번다는 제언도 있다. 역시 장사꾼에게는 역…
[길섶에서] 홍시와 곶감/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2-03
11월 중순에 언니가 생일 선물로 홍시를 만들어 먹으라며 대봉시 땡감을 한 상자 보내왔다. 그럴 줄 모르고 이틀 전에 60개가 든 반시를 한 상자 샀는데 말이다. 모두 홍시로 익혀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또 땡감인 대봉시를 신문지에 감싸서 따뜻한 곳에 놓아 두면 겉이 마르지 않고 빨갛게 익어 홍시…
[길섶에서] 인사철, 회장님 마음/오일만 논설위원 l 2014-12-02
대기업 인사철이다. 신문 인사란에 빼곡히 적혀 있는 승진 명단에 눈이 간다. 이름 세 글자, 물 먹은 인사도 있을 테고 잘나가는 인물도 있을 것이다. 봉급쟁이 인생지사 희로애락은 승진과 퇴진에 달려 있다는데, 이를 쥐고 흔드는 회장들이 더 궁금해진다. 다양한 분야에서 회장들을 오랫동안 모셨던…
[길섶에서] 기분(氣分)의 의미/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12-01
국어사전에 기분(氣分)은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이라고 풀이돼 있다. 심리학적으로 감정은 기분보다 지속 시간이 짧고 원인이 확실한 반면 기분은 감정보다 오래 지속되고 딱히 원인을 모를 때가 많다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
[길섶에서] ‘딱통’ 단상/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29
즐기는 삼겹살의 유래를 몰랐다. 1960년대 값싸진 소주의 안주용으로 개발됐느니, 1980년대 건설 노동자들이 슬레이트에 얹어 구워 먹었느니 하는 설이 있다. 1994년 국어사전에 실렸다 하고 어법상 세겹살로 써야 맞단다. 치솟는 삼겹살 값어치만큼 가격 불만은 크다. 몇 년 전 1인분에 5000원이던 것…
[길섶에서] 매운맛과 삶의 질/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28
매운맛 전성시대다. 아이들이 먹는 떡볶이는 아예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화끈하다. 너무 매워 우유를 준비해 간다는 짬뽕집도 있다. ‘청양페퍼’로 매운 파스타를 만든다는 기사를 보고 뭔가 했더니 청양고추여서 웃은 적도 있다. 최근에는 청양고추보다 몇 배 맵다는 멕시코 하바네라고추로 만…
[길섶에서] 좌망(坐忘)의 삶/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27
가끔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던 소싯적을 떠올리곤 한다.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두발자전거는 배우기도 힘들지만 일단 타고 나면 쉼 없이 달려야만 넘어지지 않는다. 인생살이와 다름없다. 세속의 그물망이 도처에 쳐 있어 견물생심, 보이는 것은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욕망도 멈출 수 없으니 어쩌…
[길섶에서] 말짱 도루묵/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26
도루묵은 초겨울부터 맛있는 생선이다. 깊은 바다에 살다 이맘때쯤 산란을 하려고 얕은 바다로 나온다. ‘홍길동전’을 지은 교산 허균(1569~1618)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은어’(銀魚)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려시대 한 임금이 목어(木魚)를 좋아해 이름을 은어로 고쳤다가 싫증 나자 되돌…
[길섶에서] 사보(社報)의 퇴장/구본영 논설고문 l 2014-11-25
기자 초년병 때인 1980년대엔 대기업은 물론 다수 중견기업들도 인쇄판 사보(社報)를 발간했다. 이따끔 아르바이트 삼아 원고 청탁에 응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종이 사보는 시나브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가 보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마저 사보를 올해를 끝으로 폐간한다고 한다. 내년부터 …
[길섶에서] 수험표/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24
수험표의 단상이라면 ‘결전을 앞둔 다짐’이 아닐까. 긴장감이 와락 엄습하고 마음 구석을 마구 짓눌러댄다. 누구는 시험을 앞둔 심정을 ‘바늘이 풍선을 겨누는 긴장감’이라고 표현했다. “수험표를 받으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는 수험생 말이 허튼 게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락에 그다지 관심이…
[길섶에서] 마음의 그랭이질/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11-22
한 대학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그랭이질’이란 말이 나왔다. 자연석 위에 놓이는 돌이나 나무 기둥의 아랫부분을 자연석의 모양에 맞추어 깎는 수법이라 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으려는 곳에 울퉁불퉁한 돌이 있다면 그 돌을 들어내지 않고 표면의 굴곡에 맞추어 기둥의 바닥을 파내고 주춧돌로 쓰는 …
[길섶에서] 오리지널의 힘/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21
지금이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르겠다. 입동이 지난 지 두 주일이 지났고, 내일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절기로는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마음속 계절은 아직 가을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네 형님이 가을이 시작될 무렵 보내 준 ‘가을편지’를 듣고 감회에 젖은 적이 있다. 이 형님은 노래를 부…
[길섶에서] 리얼 없는 리얼리티/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1-20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나 이렇게 잘산다’는 ‘자랑질’을 할 때는 선물과 음식, 여행 사진들과 함께 페이스북을 사용해야 한다. ‘오늘도 힘들다’고 푸념하고 징징대고 싶은 20대는 트위터에 140자를 날려줘야 한다. 50대와 60대는 카카오톡에서 단체로 수다를 떨면서 하루…
[길섶에서] 사랑의 체험 수기/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1-19
딸에게 “사춘기는 ‘나는 제대로 살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것이지만, 갱년기는 ‘나는 죽어 가고 있다’고 신음하는 것이다” 하고 이상한 설명을 했더니 10대의 반항이 한때 주춤했다. 이제 고인이 된 김자옥씨가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산다는 건 하루하루 죽어 가는 것이니 아끼지…
[길섶에서] 동상(銅像) 유감/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18
아침 신문에 서울 종로 사직단에 있는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갈 곳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직단은 조선왕조의 제사 시설이지만, 제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다행히 사직단 복원을 위한 발굴 작업이 내년 3~4월 시작된다고 한다. 집물고(什物庫) 같은 옛 건물터를 차지하고 있는 두 기의…
[길섶에서] 황혼 부부/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17
새벽 어르신 방송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향토색 짙은 남도 말투로 엮어 내는 인생 이야기가 여간 흥미롭지 않다. 모진 세월을 다 이겨 내고 욕심마저 내다 버린 속내엔 아쉬움도 크지만 정겨움이 버무려져 물씬 묻어난다. 주로 남편이 젊었을 때 주색놀이와 노름으로 가정을 팽개친 이야기들이다. …
[길섶에서] 오래된 징크스/구본영 논설고문 l 2014-11-15
엊그제 이른 아침. 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서울의 한 고교를 찾았다. 담벼락 옆에선 먼저 온 학부모 여럿이 몸을 떨고 있었다. 입시 날이면 꼭 한파가 찾아온다더니 징크스가 딱 들어맞았다는 느낌이었다. 오래전 기자 초년병으로서 프로야구를 취재할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당시에도 팀 성적…
[길섶에서] 심장마비/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1-14
백수 탈출을 위해 고혈을 짜던 20대의 어느 여름날 아침 친구 A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아노 전공으로 몇 주 뒤 미국 유학을 떠난다며 기대에 차 있던 친구 C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며 발인 날짜와 시간을 알려왔다. A는 “C가 어젯밤 피곤하다며 맥주 한 잔 마시고 자야겠다고 했…”라며 말을 끝내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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