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길섶에서] 매운맛과 삶의 질/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28
매운맛 전성시대다. 아이들이 먹는 떡볶이는 아예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화끈하다. 너무 매워 우유를 준비해 간다는 짬뽕집도 있다. ‘청양페퍼’로 매운 파스타를 만든다는 기사를 보고 뭔가 했더니 청양고추여서 웃은 적도 있다. 최근에는 청양고추보다 몇 배 맵다는 멕시코 하바네라고추로 만…
[길섶에서] 좌망(坐忘)의 삶/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27
가끔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던 소싯적을 떠올리곤 한다.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두발자전거는 배우기도 힘들지만 일단 타고 나면 쉼 없이 달려야만 넘어지지 않는다. 인생살이와 다름없다. 세속의 그물망이 도처에 쳐 있어 견물생심, 보이는 것은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욕망도 멈출 수 없으니 어쩌…
[길섶에서] 말짱 도루묵/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26
도루묵은 초겨울부터 맛있는 생선이다. 깊은 바다에 살다 이맘때쯤 산란을 하려고 얕은 바다로 나온다. ‘홍길동전’을 지은 교산 허균(1569~1618)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은어’(銀魚)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려시대 한 임금이 목어(木魚)를 좋아해 이름을 은어로 고쳤다가 싫증 나자 되돌…
[길섶에서] 사보(社報)의 퇴장/구본영 논설고문 l 2014-11-25
기자 초년병 때인 1980년대엔 대기업은 물론 다수 중견기업들도 인쇄판 사보(社報)를 발간했다. 이따끔 아르바이트 삼아 원고 청탁에 응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종이 사보는 시나브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가 보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마저 사보를 올해를 끝으로 폐간한다고 한다. 내년부터 …
[길섶에서] 수험표/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24
수험표의 단상이라면 ‘결전을 앞둔 다짐’이 아닐까. 긴장감이 와락 엄습하고 마음 구석을 마구 짓눌러댄다. 누구는 시험을 앞둔 심정을 ‘바늘이 풍선을 겨누는 긴장감’이라고 표현했다. “수험표를 받으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는 수험생 말이 허튼 게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락에 그다지 관심이…
[길섶에서] 마음의 그랭이질/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11-22
한 대학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그랭이질’이란 말이 나왔다. 자연석 위에 놓이는 돌이나 나무 기둥의 아랫부분을 자연석의 모양에 맞추어 깎는 수법이라 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으려는 곳에 울퉁불퉁한 돌이 있다면 그 돌을 들어내지 않고 표면의 굴곡에 맞추어 기둥의 바닥을 파내고 주춧돌로 쓰는 …
[길섶에서] 오리지널의 힘/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21
지금이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르겠다. 입동이 지난 지 두 주일이 지났고, 내일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절기로는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마음속 계절은 아직 가을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네 형님이 가을이 시작될 무렵 보내 준 ‘가을편지’를 듣고 감회에 젖은 적이 있다. 이 형님은 노래를 부…
[길섶에서] 리얼 없는 리얼리티/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1-20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나 이렇게 잘산다’는 ‘자랑질’을 할 때는 선물과 음식, 여행 사진들과 함께 페이스북을 사용해야 한다. ‘오늘도 힘들다’고 푸념하고 징징대고 싶은 20대는 트위터에 140자를 날려줘야 한다. 50대와 60대는 카카오톡에서 단체로 수다를 떨면서 하루…
[길섶에서] 사랑의 체험 수기/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1-19
딸에게 “사춘기는 ‘나는 제대로 살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것이지만, 갱년기는 ‘나는 죽어 가고 있다’고 신음하는 것이다” 하고 이상한 설명을 했더니 10대의 반항이 한때 주춤했다. 이제 고인이 된 김자옥씨가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산다는 건 하루하루 죽어 가는 것이니 아끼지…
[길섶에서] 동상(銅像) 유감/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18
아침 신문에 서울 종로 사직단에 있는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갈 곳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직단은 조선왕조의 제사 시설이지만, 제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다행히 사직단 복원을 위한 발굴 작업이 내년 3~4월 시작된다고 한다. 집물고(什物庫) 같은 옛 건물터를 차지하고 있는 두 기의…
[길섶에서] 황혼 부부/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17
새벽 어르신 방송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향토색 짙은 남도 말투로 엮어 내는 인생 이야기가 여간 흥미롭지 않다. 모진 세월을 다 이겨 내고 욕심마저 내다 버린 속내엔 아쉬움도 크지만 정겨움이 버무려져 물씬 묻어난다. 주로 남편이 젊었을 때 주색놀이와 노름으로 가정을 팽개친 이야기들이다. …
[길섶에서] 오래된 징크스/구본영 논설고문 l 2014-11-15
엊그제 이른 아침. 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서울의 한 고교를 찾았다. 담벼락 옆에선 먼저 온 학부모 여럿이 몸을 떨고 있었다. 입시 날이면 꼭 한파가 찾아온다더니 징크스가 딱 들어맞았다는 느낌이었다. 오래전 기자 초년병으로서 프로야구를 취재할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당시에도 팀 성적…
[길섶에서] 심장마비/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1-14
백수 탈출을 위해 고혈을 짜던 20대의 어느 여름날 아침 친구 A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아노 전공으로 몇 주 뒤 미국 유학을 떠난다며 기대에 차 있던 친구 C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며 발인 날짜와 시간을 알려왔다. A는 “C가 어젯밤 피곤하다며 맥주 한 잔 마시고 자야겠다고 했…”라며 말을 끝내지 못…
[길섶에서] 관록/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13
타작을 하려고 볏단을 쌓을 때 겪었던 일이다. 어른은 일에 앞서 방식을 일러 주었다. “한갓 농사일에 뭔 기술이 필요하랴”라며 아예 무시했다. 쌓은 볏단은 이내 중간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그것 봐라”라는 무언의 눈치에 되게 무안했던 경험이다. 땔감용 솔가리를 새끼로 동여맨 나뭇짐을…
[길섶에서] 음식 선물/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1-12
현금이 최고라는 사람도 있지만, 어린이에게 돈을 선물로 잘 주지 않는다. 설날 세뱃돈을 빼고는 배춧잎이라고 부르는 만원짜리가 오가는 것을 영 못마땅해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돈 선물을 받으면 엄마가 “은행에 넣어 줄게”라며 가져가서 그런 심리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로 책을 사…
[길섶에서] 무생물의 감정/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11-11
무생물이야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무생물에 대한 사람의 감정은 있는 게 분명하다. 오랫동안 쓰던 낡은 물건을 애지중지 아끼며 쓸모가 없어졌는데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런 감정 탓일 게다. 평생 곁에 두고 써 온 물건에는 지난날의 기억이나 가정의 역사가 담겨 있다. 부모가 쓰던 물건을 물려…
[길섶에서] 청진동 해장국/서동철 논설위원 l 2014-11-10
초등학교 시절 휴일이면 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러 다녔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 언제나 청진동 해장국집에 갔다. 지금은 정독도서관이 된 경기고등학교 아래 화동에 살던 1960년대 후반이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선지는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해장국은 어린아이에게도 맛있었다. 입맛이 돌아오기 전…
[길섶에서] 꿈/오일만 논설위원 l 2014-11-08
나이: 30. 경력: 트럭 운전사. 학력: 대학교 중퇴. 이런 경력으로 세상살이가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상소설에 열중한 왕따, 찌질이였고 대학 때는 전공 학과를 옮기다가 중퇴를 했다.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그렇다고 이력서에 놀라운 상상력을 갖고 있는 영화광이라 적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길섶에서] 가을 단상/구본영 논설고문 l 2014-11-07
꽤 오래전에 언론계를 떠난 선배 한 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의 가을 풍경을 그린 글이 실려 있었다. 내용 중 와 닿는 대목이 있었다. 네덜란드 설치예술가가 만든 ‘러버 덕’이란 고무 오리를 보러 온 시민들의 북새통에 놀라 진짜 백조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선배의 글엔 …
[길섶에서] 노년의 서빙/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06
“일을 하세요.” 80대 선친이 숙환으로 고생할 때 드렸던 말이다. 고통을 덜어 드리고 싶었다. 하루도 거름 없이 논밭에 나가셨다. 두려움과 우울증이 한결 간 듯했고, 병은 더 악화되지 않았다. 나도 신경이 덜 쓰였다. 잔 생각 버림의 효과다. “어디 계세요?” TV를 보니 도회지의 딸이 어머니에게…
[길섶에서] 꼴찌/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1-05
대구에서 9살 초등학교 학생이 꼴찌라서 내내 점심 급식을 꼴찌로 먹었다는 뉴스를 보고 참담했다. 퍼렇게 멍든 아이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1989년에 나와 그다음 해 속편까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1995년에는 KBS1 TV에서 ‘꼴찌에게 박수를’이…
[길섶에서] 배달 커피/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1-04
흑백 시대의 다방 추억은 많다. 마담과 배달하는 종업원(레지), 멀대와 같은 수족관, 자욱한 담배 연기 등은 매우 한국적인 분위기였다. DJ가 신청곡을 틀어 주는 음악다방과 중년들이 서너 시간을 죽쳤던 ‘노땅 다방’으로도 대별된다. 시국을 논했던 아지트 역할도 했다. 국적 불명의 계란을 동동 띄…
[길섶에서] 심리적 자궁/진경호 논설위원 l 2014-11-03
사무실에 나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일이다 보니 하루의 일상은 늘 패턴을 이룬다. 기상-운동-출근-업무-퇴근-약속-귀가로 이어지는 쳇바퀴 속에서 하루를 돌린다. 이 얼개 속 작은 일상에도 패턴이 존재한다. 가령 아침에 사무실로 나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늘 커피 내리기다. 커피를 내린 다음 컴…
[길섶에서] 잡초의 힘/오일만 논설위원 l 2014-11-01
“밀밭에서 벼가 나거나 보리밭에서 밀이 나오면 잡초 취급을 받지요.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지 못해 뽑혀 버려지는 삶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야생 들풀 연구자인 강병화 명예교수(고려대)의 말이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으며 모든 들풀은 제각기 자…
[길섶에서] 단풍 구경/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0-31
아파트 단지의 단풍이 제대로 물올랐다. 일엽지추(一葉知秋), 뭇 붉은 잎이 새삼스러운 때니 별스러운 건 아니지만 집에서 내려다보는 맛은 남다르다. 잎을 하나씩 쪼개 보는 것보단 파스텔 그림 감상하듯 먼발치서 즐기는 것이 제격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가을만 한 게 없다”는 말에 단풍도 한몫 …
[길섶에서] 권력자의 사과/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0-30
정치부 기자들끼리 낄낄거리며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권력의 먹이사슬에 관한 얘기다. 장관은 국회의원만 없으면 할 만하다고 한다. 임시국회의 대정부 질의니, 9월 정기국회니, 10월 국정감사니 하는 시기에 ‘1인 헌법기관’을 자처하는 차관급 국회의원은 장관들을 불러다 놓고 호통을 치고 면박을…
[길섶에서] 내비게이션/박찬구 논설위원 l 2014-10-29
운전 경력 20년이 다 되어 간다. 낯설고 먼 길에는 지도책이 필수였다. 서울 근교 드라이브길이든, 수백㎞ 떨어진 국립공원이든 거리낌이 없었다. 두툼하고 손때 묻은 지도책 서너 권은 늘 든든한 길 친구였다. 초행길에 방향을 놓치면 차를 세워 두고 동네 지리에 익숙할 법한 행인이나 음식점 주인에…
[길섶에서] 아내로부터의 탈출/진경호 논설위원 l 2014-10-28
청와대 뒷산 자락에 나지막이 수줍게 숨어 있는 종로구 부암동으로 삶터를 옮긴 뒤로 아내는 반려견 ‘방울이’를 데리고 백사실 계곡으로 산보를 다니는 게 하루의 일과가 됐다. 생후 2개월 때 인연으로 13년째 식구로 지내온 녀석은 깜찍한 외모에다 온순한 성격, 명민한 머리로 늘 이웃들의 사랑을 …
[길섶에서] 배려/정기홍 논설위원 l 2014-10-27
한 기관장의 배려심에 탄복한 적이 있다. 약속 장소로 가는 중간에 도착 시간을 알렸더니 골목길 먼 곳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엔 함께 온 손아래 동석자도 있었건만 서로 얼굴을 모를까봐 직접 나왔단다. 며칠 전 대선배와의 통화에서도 비슷하게 경험했다. 직접 상관으로 모셨고, 퇴직한 지 …
[길섶에서] 걷는 기쁨/구본영 논설고문 l 2014-10-25
신문을 읽다가 색다른 통계에 눈길이 갔다. 서울 시민은 하루 평균 39분을 걷는 데 비해 도쿄나 베를린 시민은 각각 50분과 52분씩 걷는단다. 그래서 일주일에 사흘은 차를 모는 스스로를 돌아봤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공기만 더럽히고 있다는 자책(?)과 함께. 물론 우리네 수도 서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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