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길섶에서] 미스킴 라일락/구본영 이사대우 l 2014-10-02
벌써 가을 초입인데 봄꽃 뉴스를 접하다니…. 이른 아침 조간신문을 뒤적이다 라일락에 대해 쓴 기사를 접하고 잠이 확 달아났다. 미 군정청 식물 채집가가 1947년 북한산에서 야생의 털개회나무 종자를 채취해 미국에서 원예종으로 개량해 이름도 ‘미스킴 라일락’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
[길섶에서] 마지막 번역 수업/문소영 논설위원 l 2014-10-01
지난 8월 말에 시작한 주 1회의 번역공부가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있다. 어느 분야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제 길을 갈 수 있다. 호러·서스펜스 장르소설의 영어 번역가로 속도가 빨라 출판업계에서 ‘번역기계’라는 별명을 붙인 조영학씨는 안성맞춤 선생님이었다. 그가 제시한 ‘번역의 ABC’는 한…
[길섶에서] 요령부득/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9-30
무릇 일과 행동엔 시말(始末)이 있다. 시작과 끝 간에는 잘잘못이 무던히 들고난다. 그런데도 잘못을 갈무리하는 건 미숙한 편이다. 세월호 유족과 대리기사 간의 집단폭행 건에 연루됐다는 모 국회의원의 입장이 이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단지 “내가 누군지 알아?”란 말로 시작된 사안은 간단히 끝…
[길섶에서] 사자성어 속의 가을/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09-29
가을이 완연하다. 가을 경치는 단연 으뜸이다. 하늘에는 기러기가 날고 산은 붉게 물든(征雁紅葉·정안홍엽) 풍경을 볼 기대에 부푼다. 국화는 자태를 뽐낼 것이며 물은 비취처럼 푸른 빛을 띠리라(菊傲水碧·국오수벽). 가을 경치는 좋은 화제(畵題)도 된다. 비 갠 가을 산의 모습(秋山雨霽·추산우제…
[길섶에서] 노후의 공적(公敵)/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09-27
장모님은 사람이 너무 오래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가끔 말씀하신다. 장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인데도 진담처럼 말하는 이유는 병에 대한 걱정과 자식들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파킨슨병을 앓는 아내를 30년 동안 돌봐온 70대 노인이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을 기도한 사건을 봤다면 더욱 그…
[길섶에서] 알밤의 일침/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9-26
가을에 수확하는 밤은 나에게 남다르다. 이맘때면 빠지지 않고 고향 형님댁을 찾아 주워온 게 밤이다. 종일 비탈을 오르내리며 줍다 보면 다리 근육이 풀리고, 허리마저 쑤셔 대는 통에 고통이 만만찮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통증은 없어지고 책상머리 일에 풀어질 대로 풀어진 다리 근육이 불끈해짐…
[길섶에서] 보톡스 미인/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9-25
보톡스는 얼굴에 독을 주입해 근육을 마비시키고 그 덕분에 근육이 잔주름 없는 팽팽한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의 피부는 20대 중반부터 지구의 중력 때문에 처지기 시작하고 웃고 울고 화내는 등 감정 표현이 반영돼 나이에 맞는 주름을 얼굴에 만들어 나간다. 많이 웃는 사람의 얼굴이 묘하…
[길섶에서] ‘어린 새뮤얼’의 기도/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9-24
1970~80년대 택시나 버스 운전석 근처에는 ‘오늘도 무사히!’ 라는 작은 그림이 매달려 있었다. 교통사고들이 잦았던 시절이라 운전자의 바람이 그랬던 것이다. 붉은 볼이 인형 같이 예쁜 금발 꼬마가 두 손을 모으고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맨바닥에서 기도하는 그림이다. 부자 되기를 꿈꾸며 걸어놓는…
[길섶에서] 인심역습(人心逆襲)/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9-23
인천 아시안 게임이 열리면서 이 지역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넘쳐 난다. 어제 아침에도 TV를 켜니 쫄면이며 물 텀벙, 세숫대야 냉면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었다. 화평동 냉면 골목이라면 호기심에 가본 적이 있다. 별명처럼 세숫대야를 방불케 하는 그릇에 냉면이 담겨 나오는데 혼자 먹기에는 조…
[길섶에서] 어느 공직자의 상/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9-22
“이번에는 합격했어요.” 전북 변산에서 공직 생활을 하는 50대 지인이 부처에서 주관한 공직자 봉사상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불과 며칠 전, 다른 지원 분야에서 떨어졌던 터라 기쁨이 더해 보였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으로 발령을 받은 뒤로 해안가를 따라 올레길을 만들고 길가에는 지역의 특산 꽃인…
[길섶에서] 컴퓨터와 독서/구본영 이사대우 l 2014-09-20
아침저녁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이 제법 소슬하다. 가을은 성큼 다가왔나 보다. 그러나 ‘독서의 계절’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신문사를 떠나 출판사를 차렸던 지인이 엊그제 그 일을 접고 다른 일자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까. 며칠 전 글로벌 기업 애플을 키운 고 스티브 잡스가 집에서…
[길섶에서] 눈물과 정(情)/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09-19
힘들게 살아온 가족일수록 눈물이 풍부하다. 함께 고생한 서러움이 이별과 재회의 순간에 북받쳐 오르기 때문이다. 눈물은 곧 정이다. 모국을 찾은 다문화 가정의 동남아 여성이 부모형제와 맞잡고 흘리는 눈물에서 그런 뜨거운 정을 느낀다. 30여년 전 입영전야에 친구들과 만취하고선 다음날 비틀거리…
[길섶에서] 9시 등교/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9-18
특목고, 자사고에 진학하지 않은 평범한 공립 고등학생인 우리 집 10대 청소년은 자정이 넘어도 잠자리에 들지 않아 골칫거리다. 술 약속이 없는 저녁이면 반드시 밤 12시 전에 취침하는데, 10대 청소년에게 잘 것을 늘 간청해야 한다. 1970년대 방영된 미국 드라마 ‘월튼네 사람들’처럼 방의 전등 스…
[길섶에서] 격식파괴 문화/오승호 논설위원 l 2014-09-17
추석 하루 전 고향에서의 술자리는 좀 지나쳤다 싶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초·중학교 동창 몇몇이 기다리고 있는 음식점으로 쏜살같이 갔다. 1, 2차에 걸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빛바래지 않는 우정을 쌓았다. 다음날 네 곳에서 차례를 지내느라 땀을 뺐다. 오후에 공항으로 가 비행기 대기…
[길섶에서] 가마솥 백숙/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9-16
옛날 시골 잔칫날에 찍은 흑백 사진에서 가설(假設) 아궁이에 무쇠솥을 걸어놓고 흰 김이 펄펄 나는 고깃국을 끓이는 모습이 왠지 정겨웠다. 대학 1학년 때 도서관에서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쌓아두고 읽을 때는 추위와 피로에 지친 장돌뱅이가 가마솥에서 퍼올린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로 몸을…
[길섶에서] 국민볼펜 유감/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9-15
연필을 오랫동안 쓰다가 싫증 나 몇 개월 전에 볼펜으로 바꿨다. 중학교 때부터 쓰던 국민 볼펜 ‘모나미 153’이다.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 넘게 필통 속의 필수용품으로 자리한 친구라 손맛이 낯설진 않았다. 직장 생활 이후 인연을 끊었는데 검정·빨강·파랑 삼색을 필기용으로 재무장시켰다. 몽…
[길섶에서] D턴/구본영 이사대우 l 2014-09-13
추석 연휴 기간 중 뉴스에서 D턴이란 낯선 용어를 접했다. 운전하면서 익힌 U턴이나 P턴이란 용어에는 익숙해졌지만 처음 듣는 말이라 생경하게만 여겨졌다. 알고 보니 명절 귀성객이 고향에서 집으로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여행지로 돌아가는 현상이라고 한다. 누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
[길섶에서] 들밥/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9-12
시골 면 소재지 중국집 간판에 ‘들밥 배달’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농촌에서도 모내기며 벼 베기를 할 때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는다더니 그 얘기인가보다 하고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농촌에서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들밥을 지어 들녘으로 나르라고 한다면 몇 남지 않은 며…
[길섶에서] 삼굿(삼찌기)/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9-11
삼찌기는 삼을 수증기로 찌는 작업인데, 표준어로 ‘삼굿’이라고 한다. 최근 경북 안동과 강원 정선에서 삼 수확철을 맞아 전통 삼베옷을 생산하는 전 과정을 재현해 새삼스러웠다. 삼을 삶는 화덕(일부 지방은 토담 건물)은 옛 시골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어서 기억을 더듬어 짜맞춰 보았다. 키가 큰 …
[길섶에서] 명절의 의미/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09-10
먹을 것, 입을 것이 귀하던 시절엔 명절은 아이들에게 부족한 두 가지를 채우는 기쁨을 주었다. 평소에 먹어보지 못하던 제수 음식을 우겨넣듯 먹고는 배앓이를 하곤 했다. 명절날에 입을 새 옷이나 신발을 미리 선물 받고는 누가 훔쳐갈까 자기 전에는 머리맡에 고이 모셔놓았었다. 풍년을 내려준 조상…
[길섶에서] 슈퍼 만월(滿月)/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9-06
“달이 나만 따라다녀!” 어려서 대낮처럼 환하게 보름달이 뜬 길을 걸을 때면 하얀 달이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신기해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탄성을 지르곤 했다. 즐거웠다. 조금 더 자란 뒤로 달이 나만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밉상인 동생도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고 왠지 김샜다. 나만 예뻐하는…
[길섶에서] 명절용 깁스/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9-05
온라인상에 느닷없이 가짜 깁스와 립스틱이 화젯거리로 등장했다. 시집·장가 못가고 취업 못한 젊은이와 시댁에 가기 싫은 며느리들이 꼭 챙겨야 할 추석 물품이라며 연일 관심사다. 이를테면 팔다리에 깁스를 해 다친 척을 해야 하고, 창백한 색의 립스틱을 입술에 발라 아파 보여야 추석 연휴에 일 …
[길섶에서] 관철동/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9-04
밥이건, 술이건 먹는 걸 좋아한다고 소문이 난 탓인지 맛집을 다룬 글을 써달라는 주문을 가끔 받는다. 얼마 전에는 “당신이 그런 걸 다 먹느냐”는 친구들의 비아냥을 들으며 종로의 작은 피자집에 관한 글을 썼다. 겉모습은 패스트푸드 분위기가 물씬한 체인점이지만, 음식에서는 슬로푸드의 냄새도…
[길섶에서] 중립/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9-03
어려서 학년으로 5년 위인 오빠랑 말싸움이 나면 엄마는 “그만 해라”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중학생에게 대들었으니 형제간의 위계를 따져서 그랬을 것이다. 무엇보다 평화를 사랑하던 엄마는 집안에서 큰소리 나는 분쟁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그런 만류가 분했다. 말대꾸를 하…
[길섶에서] 통증/박찬구 논설위원 l 2014-09-02
“어휴,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뒀어요.”, “아, 네, 겁도 나고 바쁘기도 해서….” 나이 지긋한 치과의사와 내 치아와의 전쟁은 6개월 남짓 이어졌다. 임플란트에 교정까지, 마무리단계다. 20대 때 앞니 쪽에 씌운 브리지가 한참 수명을 넘긴 탓이다. 통증으로 왼쪽 정수리 신경까지 욱신거…
[길섶에서] 척하는 삶/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9-01
인터넷상에서 ‘척하며’ 사는 사례를 소개하는 방송을 보고서 싱겁게 웃었다. 이를테면 고급 음식점에서 맛있게 먹은 사진을 올린 게 거짓임이 나중에 탄로 난 것 등이다. 엉큼함에 빈틈 없어 보였다. ‘척하다’는 앞말을 보조하는 동사인데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모른 척, 아는 척, 하는 척, 못 본…
[길섶에서] 낙원의 먹거리/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8-30
어르신들이 모이는 탑골공원의 성격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문화공간이라고 부르자니 어르신을 위한 문화는 거의 없다. 휴식공간이라고 하자니 일거리도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적당한 표현이 아니다. ‘어르신들의 홍대앞’이라는 기사 제목도 본 듯하지만, 노년을 견디는 공간의 성격이 짙은 탑골공원…
[길섶에서] 이 상사의 전화/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8-29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 인사계 이상혁이오.” 군 복무 때 중대 선임하사의 단상을 쓴 나의 글을 읽고 회사 전화로 연락한 것이다. 그는 군생활 내내 자랑 삼던 월남전 참전 ‘맹호용사’다. 회의를 마친 뒤 반가움에 적어 둔 전화번호를 얼른 눌렀다. 연결이 안 된다. 문자를 넣어도 기척이…
[길섶에서] 미정(未定)/박찬구 논설위원 l 2014-08-28
공상과학 영화의 인조인간처럼 사람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삶의 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이고 앞날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정의 상태이기에 하루하루 개인과 사회는 다양한 갈래 앞에서 선택의 망설임을 겪게 된다. 백 리를 걸어 서신을 전하던 조상들과…
[길섶에서] 무학대사/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8-27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도움을 주고 한양 천도를 이끌었다는 무학대사는 왕의 권위에 비굴하지 않았다. 어느 날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두고 “눈앞에 돼지가 보인다”고 조롱하자, 그는 태연하게 “내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면서 “돼지 눈에는 돼지가,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고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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