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길섶에서] 바보 낚시/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7-29
우리가 방파제에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녘이었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낚시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큼지막한 릴이 달린 긴 낚싯대로 미끼를 바다 한가운데로 던져넣고 있었다. 곁에는 하루 성과가 담겼을 커다란 쿨러가 보였다. 다가가 보니 손바닥 길이를 넘지 않는 황어며 가자미, 임연수어 대…
[길섶에서] 꿈길(몽로)/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7-28
꿈길의 한자 이름 ‘몽로’(夢路)를 발음하면 취한 듯 약간 몽롱한 기분이 든다. 초저녁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지하에 자리 잡은 ‘몽로(夢路)’에 들어가 문어·골뱅이무침에 맥주 한 잔을 마시면 풍진세상을 뒤로할 만한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몽로…
[길섶에서] 100일/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7-26
동양에서 100일은 중요했다. 요즘은 건너뛰기도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 꼭 100일이 되면 조촐한 백일잔치를 열어주었다. 백일상은 남아선호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차려주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높은 유아 사망률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아기를 격려하며 부모의 수고를 위로하는…
[길섶에서] 잊혀 가는 사투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07-25
‘토지’를 다시 읽고 있는데 사투리(방언)를 몰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서울 출신 젊은 사원들이 경상도 출신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사실일 듯하다. 골프장에서 상사가 “저짜 저 방구를 전자가 쌔리삐라”라고 말한다면 못 알아 들을 게 뻔하다. “저기 저 바위를 겨누어 (공을) 쳐라”…
[길섶에서] 살강의 추억/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7-24
부엌의 선반 ‘살강’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사투리로 여기지만 시렁의 뜻, 표준말이다. 부엌의 벽에 대나무 발을 쳐 통풍이 되고 물기도 잘 빠져 그릇을 씻어 얹어두던 곳이다. 요즘의 음식이야 냉장고를 들고 나지만 옛 여름엔 식은 밥, 삶은 국수는 살강에서 머물다가 밥상에 올랐다. 찐 감자나 고…
[길섶에서] 화장/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7-23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다. ‘칼의 노래’를 지은 김훈의 같은 이름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배우 안성기가 주연을 맡았다. 지난해 12월 촬영에 들어가 부랴부랴 4월에 후반 작업까지 마무리한 것은 5월 칸 영화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지 언론의 긍정적 수상 …
[길섶에서] 어떤 예언/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7-22
해외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40대 한 소설가는 손에 잡히는 미래가 없던 20대에 서울 신촌 어느 유명한 역술가로부터 “소설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고 한다. 경영학 석사과정이었던 그는 뒷등으로 흘려듣고서 통신동호회 친구들에게 술자리 안줏거리로 풀었다고 했다. 영어 학습서로 유…
[길섶에서] 냉면 혹은 국수/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7-21
우연히 백석의 시 ‘국수’를 읽었다. 국수 얘기가 아니라 냉면에 대한 찬사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큰 관심은 없었던 시인에 대한 애정이 갑자기 충만한 느낌이다.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밀가루가 흔치 않은 시절 평…
[길섶에서] 재능 vs 노력/진경호 논설위원 l 2014-07-19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캐럴 드웩 스탠퍼드대 교수의 실험이다. 초등학생 400명을 둘로 나눠 문제 10개를 풀게 한 뒤 A집단 학생들에겐 “참 똑똑하구나”하고 재능을 칭찬하고, B집단엔 “참 열심히 하는구나”하고 노력을 칭찬했다. 엇비슷한 성적의 두 집단은 뒷 실험에서 놀라운 차이를 보였다. 난이…
[길섶에서] 휴가 미학/오승호 논설위원 l 2014-07-18
여름휴가를 갔던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다. 아이들이 어릴 땐 의무감으로 해수욕장이며 계곡을 찾곤 했다. 그러나 휴가철에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했던 것도 오래가지는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가족 휴가는 멀어져 갔다. 상급학교 진학 준비로 시간을 내기 쉽지…
[길섶에서] 매미 실종 사건/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7-17
암컷을 부르는 수컷 매미의 데시벨 높은 울음소리에 고통스러워 장마가 끝난 7~8월이면 귀를 막고 다니다시피 했다. 주초 출근길에 서울 광화문 인도에서 죽은 매미의 시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매미의 시체를 앞에 두고야 비로소 매미의 울음소리, 좀 더 본질적으로 매미의 부재를 깨달은 덕분…
[길섶에서] 마른 장마/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07-16
장마가 실종됐단다. 사실 2009년부터 기상청은 장마 예보를 중단했다. 기상의 변화 탓이다. 길게는 한 달 가까이 비를 뿌려 모내기를 한 논에 물을 대주고 고추밭을 흠뻑 적셔주던 고마운 장마를 못 보는 해도 있게 된 것이다. 비가 쏟아져야 할 장마철의 가뭄에 농심은 타들어간다. 대신에 때를 가리지…
[길섶에서] 20대 해녀/오승호 논설위원 l 2014-07-15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제주 해녀들이 잡은 전복을 먹던 감흥을 떠올려 본다. 해녀들은 바닷가를 찾는 이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여유가 넘친다. 물질을 끝내고 가쁜 숨을 내쉬는 숨비소리에서는 고단함이 묻어나지만 ‘태왁’에 몸을 맡기고 물살을 가르…
[길섶에서] 끝사랑/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7-14
휴가 때 가끔 집에 있어 보면 안다. 중년의 남성들이 일(직업)없이 노닐면 대접은 고사하고 꽤 서러울 거라는 것을. 중년 여성의 끊임없는 잽(구박)을 온종일 막아내야 한다. ‘오랜만에 따뜻한 집 밥 한번 얻어 먹자’는 건 희망일 뿐, 링 위의 하루해는 길기만 하다. ‘미운 일곱 살’ 짝인 요즘 중년…
[길섶에서] 무대 위의 나/박찬구 논설위원 l 2014-07-12
무대에 올랐다. ‘염장이’를 비롯해 1인 15역의 모노극을 하는 배우가 앞줄에 앉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박형사 아니요”라며 손목을 잡아당겼다.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150명 남짓한 관객들의 시선이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훑고 있었다.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나이…
[길섶에서] 나눔 미학/오승호 논설위원 l 2014-07-11
서울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하는 군대 동기는 매월 수입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라며 구청에 맡긴다. 액수를 얘기하지는 않지만 모르긴 해도 지갑은 가벼워도 마음은 넉넉한 작은 기부를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예비역 육군 중령인 그는 “집안 …
[길섶에서] 편도 차표/구본영 논설실장 l 2014-07-10
정치인 출신 지인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란 그의 글 속에서 “인생은 ‘one way ticket’(편도 차표)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치판에서 영욕을 함께 맛보면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부침을 겪은 뒤의 소회라 여겨졌다. 그렇다. 한번 왔다가…
[길섶에서] 유효기간/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7-09
1994년 영화 ‘중경삼림’은 홍콩의 낭만을 배경으로 한 청춘남녀 4명의 어긋난 사랑 이야기다. 탕웨이가 출연한 영화 ‘색·계’에서 만난 중후한 매력의 매국노 량차오웨이가 아닌, 여전히 잘생겼으나 미숙하고 어설픈 젊은 량차오웨이가 남자 주인공이다.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길섶에서] 타성(惰性) 여행/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7-08
학창 시절 친구 넷이 작당해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강원도 양양. ‘제2의 인생’으로 농업경영인을 꿈꾸는 친구가 조직한 영농조합이 시험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한계령을 넘어가기로 한 만큼 자연스럽게 점심은 오색약수터에서 산채비빔밥, 저녁은 바닷가에서 생선회를 먹는 계획을 세웠…
[길섶에서] 엘레지의 추억/손성진 수석논설위원 l 2014-07-07
한국인의 피에는 한(恨)이 녹아 있다. 슬픈 분위기의 전통가요, 엘레지(elegy)는 한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엘레지를 좋아한 것은 한 많은 그들의 인생이 노래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혼의 엘레지’, ‘용두산 엘레지’ ‘해운대 엘레지’…. 1960년대는 애절…
[길섶에서] ‘호저(豪猪) 딜레마’/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7-05
지인에게 작은 부탁을 했더니 세상 돌아가는 물정도 모르냐는 말투다. 한마디를 더했다. 그의 직장에서는 서로 간에 부탁하지 않는 게 오랜 분위기란다. 농번기에 품앗이하던 순정의 시절도 아니고 이권에 개입돼 망신당하기 십상인 요즘이다. 다소 매정했지만 그의 지적이 신선하게 다가선다. 고슴도…
[길섶에서] 민심/오승호 논설위원 l 2014-07-04
과음을 한 다음날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60대 기사의 품평이 마음에 와 닿는다. 11억원짜리 아파트 분양 현수막 문구를 보더니 비판 일색이다.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이 많지 않다면서 핵가족 시대인데 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달라진 가족 풍속도까지 동원했다. …
[길섶에서] 7월의 잡초 제거/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7-03
텃밭을 일구는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7~8월 잡초 제거하는 재미도 끝내준다. 혹시 분노 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유기농 하는 농부네를 찾아서 잡초 뽑기 자원봉사라도 권유하고 싶은 수준이다. 7월의 잡초는 4~5월 잡초와 달리 땅에 깊게 뿌리박는다. 6월 망종 무렵 벼 모내기 철에 내리는 초여름 …
[길섶에서] 주머니 속 몽당연필/박찬구 논설위원 l 2014-07-02
몽당연필을 잃어버렸다. 새끼손가락에서 손톱 하나 더한 길이의 몸피다. 뒤지고 훑어도 헛일이다. ‘오호통재(痛哉)라’까지는 아니어도 저리고 짠한 상실감은 어쩔 도리가 없다. ‘너’는 바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손바닥만 한 스프링 수첩과 단짝이었다. 검은 스프링들이 만든 반원형의 공간 속에…
[길섶에서] 농활/박홍환 논설위원 l 2014-07-01
지난 주말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충북 충주의 한 마을에서 농활 중인 대학생들을 만났다. 4박5일 일정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옥수수와 복숭아 수확기를 맞아 일손이 크게 부족한 농촌 마을에 어설픈 손길이나마 보태겠다는 생각이 기특했다. 취업준비, 스펙쌓기 등에 바쁜 학생들이 외면한다고 해서 농…
[길섶에서] 언쟁의 뒤끝/정기홍 논설위원 l 2014-06-30
며칠 전에 편의점에 들렀다가 중년의 여직원과 언쟁이 있었다. 사야 할 물건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저런 게 있는데, 그게 뭐더라…”라고 두어 번 말한 게 화근이 됐다. 대뜸 “반말하지 마세요. 내 나이 사십이오”라며 빤히 노려본다. 무심코 한 말이 염장을 지른 게 분명하고, 제대로 한 방을 맞…
[길섶에서] 망각/오승호 논설위원 l 2014-06-28
출근할 때 저녁 약속이 있는 점을 고려해 가장 깔끔한 양복을 골라 입었다. 그런데 퇴근 무렵 배가 출출해지더니 ‘식사를 하면서 소주나 한 잔 같이할 사람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번개 모임으로 한 명을 구하고는 식당으로 가면서 서너명에게 연락을 했다. 추가 인원을 모집하는 데는…
[길섶에서] 변신/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6-27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191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변신’에 나오는 외판원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아침 거대한 곤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업에 실패에 큰 빚을 진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하며 헌신하던 잠자는 곤충으로 변신한 순간부터 직장은 물론, 가족에게 외면당한…
[길섶에서] ‘냉면 산업’/서동철 논설위원 l 2014-06-26
지난주 일본기자 두 사람을 서울의 유명한 평양 냉면집으로 안내했다. 이들은 냉면이 처음이라고 했다. 맛집과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기자들이니 품평이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냉면 그릇의 바닥이 반짝이도록 육수까지 깨끗이 비웠다. 한 마디로 맛있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에서도 냉면에 대한 …
[길섶에서] 농산물 선물/문소영 논설위원 l 2014-06-25
‘시골 사는 시어머니가 농사지었다며 벌레 먹은 구멍이 숭숭 난 열무와 배추를 보냈다. 꾀죄죄하고 지저분하다’는 내용의 글이 수년 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농약 안 친 유기농이네요. 버릴 요량이면 택배비를 낼 테니 이 주소로 보내주세요”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필자의 의도는 ‘별볼일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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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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