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때문…2002년엔 대기업 계열사가 ‘주범’
‘제2의 카드대란’이 우려될 정도로 과열되는 카드업계의 경쟁은 대형 금융지주 계열사들이 주도하고 있다.2002년 카드대란이 일어날 당시 대기업 계열사들이 시장을 혼탁하게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카드대란 당시 ‘김대중 정부’는 침체한 경기를 살리고자 규제를 대폭 풀어 신용카드 시장이 급팽창하자 대기업과 은행 계열 카드사 간 치열한 시장 쟁탈전이 벌어졌다.
LG카드와 삼성카드가 선두 다툼을 벌였고, 국민ㆍ외환ㆍ우리은행 등이 별도의 카드 계열사를 만들어 선두권 진입을 노리는 형세였다.
경쟁이 과열되자 대학생이나 실업자 등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카드를 발급하는가 하면, 담보나 신용 없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현금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때문에 카드대란으로 불리는 카드사 부실을 불러왔다. 카드사 연체율은 2003년 28.3%까지 치솟았고, 자기자본비율은 -5.4%로 추락했다.
부도 위기에 직면한 카드사들은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국민카드는 2003년 국민은행의 사업부로 흡수됐고, 2004년 외환카드와 우리카드도 각각 모은행에 흡수됐다.
삼성그룹은 삼성카드에 5조원을 투입했고, LG그룹은 LG카드를 채권단에 넘겼다.
신용카드 시장이 2000년대 후반부터 완연히 회복되자, 모기업의 품으로 숨어들었던 카드사들이 하나둘씩 과열 경쟁에 다시 나서고 있다.
업계 1위의 LG카드는 2007년 신한금융그룹으로 넘어가 신한카드와 합병됐다. 그 덕분에 신한카드는 23%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며 수위 자리를 굳혔다.
KB국민카드는 지난해 3월 다시 전업 카드사로 독립했다. 신용카드 회원 수가 1천70만명으로 신한, 삼성 등과 더불어 ‘1천만 회원 클럽’에 가입했다. 시장점유율은 14%에 달한다.
2009년 하나은행에서 분사한 하나카드는 이듬해 2월 SK텔레콤과 합작투자해 사명을 ‘하나SK카드’로 바꾸고 본격적인 카드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로 한 식구가 된 외환 카드부문을 합치면 시장 점유율이 9%에 달한다.
우리은행, 농협 등의 카드 부문까지 합치면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50%를 훨씬 넘는다.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가 시장을 주도하게 된 데는 은행마다 점포 수가 1천여개에 이르는 전국적인 영업망과 막강한 자금력, 모그룹의 브랜드 이미지 등을 십분 활용한 덕이 컸다.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의 시장 확대는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은행이 대출을 해주면서 신용카드 회원 가입을 강요하는 이른바 꺾기 실태가 만연했다는 것이다. 은행 대출이 쉽지 않은 개인 고객은 울며 겨자먹기로 카드를 발급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일 “은행계 카드사가 급성장한 데는 꺾기의 도움이 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꺾기 단속을 나가봤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개인은 ‘을’의 관계여서 쉽게 입을 열지 않아 단속에 어려움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계열 은행과 연계해 고객을 현혹하는 ‘미끼 상품’을 내놓은 것도 골칫거리다.
지난해 신한은행이 출시한 연이자 12%짜리 ‘생활의 지혜 적금 JUMP’의 기본 이자는 연 3.2%에 불과하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월 150만원 이상, 총 1천800만원 이상을 쓰고 카드 결제계좌 지정 등 온갖 조건을 충족해야 연 12%를 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이 내놓은 ‘우리매직7적금’도 연 4%의 기본이자 외에 3%의 우대이자를 받으려면 직전년도 카드 사용액보다 최소 500만원, 최대 1천만원 이상을 추가로 써야 한다.
각각의 자산이 300조원을 넘는 대형 금융그룹의 카드 계열사들이 고객 유치를 위해 이러한 ‘꼼수’에 의존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대출을 빌미로 고객에게 ‘꺾기’를 강요하는 것은 강자의 횡포나 마찬가지다. 서민금융을 내세우는 금융지주사들의 이런 행태는 당장 시정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