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최근 더 듣고 보게 되는 ‘교민’(僑民)에도 ‘흩어진’, ‘떠도는’이란 디아스포라 흔적이 있다. 그리고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 있다. 사전적으로야 ‘외국에 사는 자기 나라의 국민’이지만, 이런 의미가 바닥에 깔려 있다. ‘교민’이란 낱말 자체에서는 흐릿해졌을지라도 ‘교’는 본래 ‘더부살이’, ‘임시 거처’, ‘타향살이하다’, ‘잠시 머물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에 머물며 살게 된 이들은 ‘재일교포’가 됐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들은 ‘재미교포’가 됐다. 다른 나라에 사는 동포, 그러니까 같은 민족이란 뜻으로 ‘교포’라고 한 것이다. 남의 나라에서 더부살이 한다는 뜻을 거리낌없이 보였다.
1990년대 중반 미국 한인 사회에서는 ‘교포’ 대신 ‘동포’나 ‘한인’을 쓰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교포’라는 말이 긍정적 의미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응을 얻어 이후 ‘교포’는 물론 ‘교민’이란 표현도 사라져 갔다고 한다. 미국 사회에서는 ‘한인’을 많이 사용하게 됐고, ‘동포’를 더 쓰게 됐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형태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했다. 우한 지역에서 발병했다고 해서 초기에는 ‘우한 폐렴’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용어를 권고했다. 우리 정부도 공식적으로 이렇게 부른다. 언론도 대부분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병명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건 지역에 대한 혐오와 차별 등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이러한 원칙은 2015년에 마련됐다.
우한 지역에 거주하던 우리 국민들이 이틀에 걸쳐 들어왔다. 유학생도 있고, 회사 주재원, 기타 사업을 위해 머물던 이들도 있었다. 이들을 뭉뚱그려 우리 대부분은 ‘국민’ 대신 ‘교민’이라고 불렀다. ‘우한 교민’이거나 ‘우한 귀국 교민’이라고 했다. 편하다는 이유로, 관습이라는 이유로 ‘교민’이란 말을 다시 불러왔다. 다른 이름을 붙이는 건 구별이고, 구별은 또 다른 배제가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우한 거주 국민´이라고도 했다. 배려하는 마음과 차별 없는 태도에서 나온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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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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