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 말들엔 아직 ‘둏다’(좋다)와 ‘댜르다’(짧다) 같은 것들이 살아 있다. 서울 사람들이 17~18세기에 쓰던 형태다. 주어를 가리키는 조사도 ‘-가’가 아니라 ‘-이’다. ‘소가 많다’ 대신 ‘소이 많다’ 하는 식이다. 여기에 말의 높낮이(성조)까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갈 수 없는 땅이다. 곽충구(69) 서강대 명예교수는 대신 두만강 북쪽 조선족 마을을 1995년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곳에 육진방언을 쓰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는 중국 지린성 훈춘시 경신진의 회룡봉, 벌등 마을을 중심으로 한민족 문화가 잘 보존된 곳의 어르신들을 만났다. 틈틈이 익힌 그곳의 언어로 말을 건네며 신뢰를 쌓아 갔다. 더불어 이곳의 말들을 하나씩 하나씩 사전에 채워 나갔다.
사전 출간은 예정보다 늦어졌다. 한인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전통, 민속과 관련한 내용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사, 농기구, 음식, 세시풍속 같은 말을 조사하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가랖떡, 골미떡, 꼬장떡 등 떡 종류 37개도 표제어로 올렸다. 낱말마다 발음은 물론 성조, 품사, 뜻풀이, 용례, 관용구까지 꼼꼼하게 넣었다. 의심스러운 것은 다시 물어 가며 고치고 다듬었다. 어떤 사전보다 풍부하고 생생한 용례들을 실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16년까지 매년 방학이면 두만강 조선족 마을을 찾았다. 하지만 두만강 발원지인 백두산에는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찾을 틈이 없었다. 두만강가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는 게 유일한 휴식이었다.
지난해 10월 ‘두만강 유역의 조선어 방언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결과물이 나왔다. 국어사전은 국어학의 꽃이라 했는데, 23년 만에 핀 꽃이었다. 4200여쪽에 표제어 수는 3만 2000여개. 규모도, 사전의 정밀함도 놀랍지만, 곽 교수의 섬세하고 오롯한 청취 능력과 관찰력은 더 놀랍다. 여기에 오랜 끈기는 감동을 준다. 그는 이 지난한 작업을 거의 사비를 들여 가며 혼자 해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지경을 넘어선 역작이다. 크게 박수 보낼 일이다.
wlee@seoul.co.kr
2020-02-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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