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코커스 개표 사고로 선거관리 후진성 또 드러나
2000년 플로리다주 펀치카드 사건 땐 재검표 파문
이번엔 1·2차 총투표수 불일치 드러나…음모론까지 제기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강국이자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이지만, 선거관리 시스템과 선거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의 군사정권 시절에나 보던 체육관 선거가 여전히 이뤄지고, 간접선거 방식의 대선에서는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오히려 낙선하는 일이 벌어지는 국가가 미국이다. 민주당 경선 투표 결과가 ‘지각 발표’되는 사고가 발생한 지난 3일(현지시간)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는 과거 미국에서 있었던 ‘선거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정치사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투·개표 사고로는 2000년 대선에서 있었던 플로리다주 펀치카드 투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플로리다는 후보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를 받아 특정 후보자 번호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투개표를 했다. 문제는 구멍을 뚫을 때 생기는 종이부스러기가 투표용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용지가 기계상으로는 무효표, 수개표로는 유효표로 분류되며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재검표 사태까지 간 ‘플로리다의 악몽’을 계기로 미국의 각 주는 전자투표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전자투표 기기가 투표 정보를 절반도 저장하지 못하거나 터치스크린 미작동, 선거관리 직원들의 미숙한 대응 등 연이어 사고가 발생했다. 2002년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를 민주당 도지사 예비선거에 도입한 플로리다주는 선거 결과가 컴퓨터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고, 2006년 9월 예비선거에서 전자투표기를 도입한 메릴랜드 주는 컴퓨터가 정당 기표를 잘못 판독하거나 투표기에 메모리카드가 전송이 안되는 등 사고가 났다. 사고가 잇따르자 미국에서는 전자투표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2006년에는 미국 선거시스템의 취약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해킹 데모크라시’가 제작돼 충격을 줬다. 이 영화는 한 유명 선거관리 업체의 시스템에서 어떻게 투개표 조작이 이뤄지는지 보여주며 논란을 야기했다.
이번 ‘아이오와 참사’ 직후 외신들은 1·2차 투표의 총투표수가 일치하지 않는 선거구가 나오는 등 과거 선거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 일각에서는 외부의 해킹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군 소속 해커들이 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 측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의혹을 떠올릴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즉각 해킹이 아닌 기술적인 문제였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 안팎에서는 음모론이 터져나왔다. 공교롭게도 사고의 원인이 된 투표 결과 집계용 스마트폰 앱의 제작자가 클린턴의 대선 캠프 출신으로 드러났는데, 이때문에 클린턴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로비 무크가 이 앱의 제작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는 결국 가짜뉴스인 것으로 판명났지만, 선거 관리에 대한 불신이 더욱 높아졌다는데는 큰 이견이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외부세력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을 막기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하던 중에 이같은 대형 사고가 일어나며 스스로 망신을 자초한 꼴이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술의 결함이 어떻게 선거판을 거짓정보와 음모론의 장으로 만드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11월 대선을 앞둔 ‘선거의 해’를 맞은 미국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또다른 ‘선거 참사’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다가오는 선거 일정에는 더 많은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당장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서 유권자들은 보안전문가들이 해킹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는 새로운 터치스크린 방식의 투표를 하게 된다”고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2000년 플로리다주 펀치카드 사건 땐 재검표 파문
이번엔 1·2차 총투표수 불일치 드러나…음모론까지 제기
아이오와 코커스 1위 피터 부티지지-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정치사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투·개표 사고로는 2000년 대선에서 있었던 플로리다주 펀치카드 투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플로리다는 후보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를 받아 특정 후보자 번호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투개표를 했다. 문제는 구멍을 뚫을 때 생기는 종이부스러기가 투표용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용지가 기계상으로는 무효표, 수개표로는 유효표로 분류되며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재검표 사태까지 간 ‘플로리다의 악몽’을 계기로 미국의 각 주는 전자투표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전자투표 기기가 투표 정보를 절반도 저장하지 못하거나 터치스크린 미작동, 선거관리 직원들의 미숙한 대응 등 연이어 사고가 발생했다. 2002년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를 민주당 도지사 예비선거에 도입한 플로리다주는 선거 결과가 컴퓨터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고, 2006년 9월 예비선거에서 전자투표기를 도입한 메릴랜드 주는 컴퓨터가 정당 기표를 잘못 판독하거나 투표기에 메모리카드가 전송이 안되는 등 사고가 났다. 사고가 잇따르자 미국에서는 전자투표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 대선 플로리다주 수검표 현장의 모습-AFP 연합뉴스
이번 ‘아이오와 참사’ 직후 외신들은 1·2차 투표의 총투표수가 일치하지 않는 선거구가 나오는 등 과거 선거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 일각에서는 외부의 해킹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군 소속 해커들이 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 측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의혹을 떠올릴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즉각 해킹이 아닌 기술적인 문제였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 안팎에서는 음모론이 터져나왔다. 공교롭게도 사고의 원인이 된 투표 결과 집계용 스마트폰 앱의 제작자가 클린턴의 대선 캠프 출신으로 드러났는데, 이때문에 클린턴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로비 무크가 이 앱의 제작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는 결국 가짜뉴스인 것으로 판명났지만, 선거 관리에 대한 불신이 더욱 높아졌다는데는 큰 이견이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외부세력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을 막기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하던 중에 이같은 대형 사고가 일어나며 스스로 망신을 자초한 꼴이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술의 결함이 어떻게 선거판을 거짓정보와 음모론의 장으로 만드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첫 경선이 열린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4일(현지시간) 당의 한 관계자가 경선 결과 발표 지연 사태를 부른 투표 결과 집계용 앱이 작동되고 있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다.-디모인 AP 연합뉴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