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 인물통찰 】 김종성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
‘숙주나물’이란 이름에서 보듯, 배반의 화신처럼 여겨지는 신숙주가 알고 보니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끈 탁월한 인재였다? 국정을 어지럽힌 외척 난신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윤원형이 사실은 서얼 등용을 추천하고 양반 기득권 세력의 이익 독점에 제동을 건 정치가였다?이처럼 교과서나 역사서에 의해 형성된 고정관념을 깨는 도발적인 평가를 통해 18명의 역사인물들에 대한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 책이 나왔다. ‘한국사 인물통찰’(김종성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이다.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18명의 말과 행적, 활동 당시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왜곡된 측면은 없는지 살폈다. 찬사의 이면을 되짚었고, 폄하의 밑바닥을 들쑤셨다. 결과는 놀라운 수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자는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을 거둔 ‘구국의 명장’쯤으로 평가받지만, 당시 세계의 패자였던 요나라의 남진을 꺾음으로써 동아시아 전역에 평화구도를 정착시킨 세계적인 영웅이었다고 주장한다. 꽉 막힌 강경 쇄국론자로 인식된 흥선대원군도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외려 마지막까지 국제친선에 매달린 인물이었다는 것.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태종에게서 ‘양보’를 뜻하는 한자 ‘양(讓)’이 들어간 군호를 받은 양녕대군이 실제로는 충녕대군(세종)에게 경쟁심을 가졌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한 대학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퇴계 이황이 28세 때부터 69세까지 무려 42년씩이나 관계(官界)를 들락거린 ‘정치 9단’이었으며, 효종과 함께 북벌론의 기수로 알려진 송시열이 실제로는 북벌과 관련해 아무런 일도 추진하지 않았다는 등 ‘발칙한’ 주장도 여럿 내세웠다.
태조 이성계가 여진족의 후예일 수도 있다는 의혹, 고종황제를 막후에서 조종한 것으로 알려진 명성황후가 사실은 남편의 진정한 후원자였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이들 18명 외에도 잘못 알려진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며 “이 책을 통해 다른 역사인물들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1만 3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10-02-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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