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치맛바람

따뜻한 치맛바람

입력 2010-02-07 00:00
수정 2010-02-07 16:5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전교회장 삼 형제를 둔 김기동 씨 가족

인천 서구 가좌동에 유명한 삼 형제가 있다. 두 살 터울의 승현, 성훈, 성준 형제. 올해 고3이 되는 큰형 승현이는 인천고등학교의 전교회장이고, 고등학생이 되는 성훈이는 제물포중학교에서 지난 1년간 전교회장을 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막내 성준이는 작년 12월에 있었던 선거에서 전교부회장에 당선되었다. 성준이가 다니는 제물포중학교는 큰형과 둘째형이 전교회장을 했던 곳이니, 이 학교에서는 그야말로 이들 삼 형제를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듣는다.

이미지 확대


아들 셋이 모두 전교회장이니 모르는 이들이 보면 이 집 엄마 치맛바람 꽤나 날렸겠다는 의심을 받을 만도 하다. 내 아이를 ‘리더’로 키우고 싶은 것이 요즘 모든 엄마들의 소망 아니던가. 어머니 이복순 씨를 만나 그 비결부터 물었다. “글쎄요, 제가 해준 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이들이 다 자기 알아서 한 거지.” 사실 복순 씨는 큰아이 승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 했다. 남편 김기동 씨는 중국에 가 있고, 복순 씨 혼자 식당 주방 일을 하고 남의 집 아이를 봐주며 세 아이를 건사해야 했던 것이다. 힘들어서 밤마다 울기도 많이 했단다.

그런데 반장을 도맡아 하던 승현이가 어느 날 전교회장 선거에 나가고 싶다며 “2만 원만 주세요” 했단다. 사진 찍고 포스터 만들고 피켓 만들 돈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가 만들어준 화려한 피켓을 몇 개씩 들고 햄버거 돌리며 선거운동 할 때 승현이는 달랑 피켓 하나 들고 친구들과 발로 뛰어서 ‘당선’을 거머쥐었다. 성훈이, 성준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복순 씨는 한 번도 반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돌리거나 어린이날에 선물을 안겨준 적이 없다.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한 적도 없다. 대신 형편이 어려운 반 친구를 위해 몰래 급식비를 내주거나 결손가정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밥을 먹이고, 소풍이나 수학여행 날 그 아이 몫까지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것이 복순 씨의 치맛바람이었다. 선생님들께는 정성껏 호박죽과 김밥을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런 그를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뒤에서 흉을 보는 학부모도 적지 않았다. “학교에 보탬도 못 되면서 뭐 하러 애들을 선거에 내보내느냐고 그래요. 속상해서 애들한테 반장 되면 내쫓는다고 한 적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소풍날이면 도시락을 싸올 수 없는 친구들 몫까지 더 싸달라고 부탁하고, 임신한 선생님을 대신해 친구의 토사물을 치우고, 왕따 당하는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보듬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런 힘듦도 잊게 했다. 그녀 역시 환경연대 회원으로 활동하며, 노인복지관에서 점심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 뒤에는 아버지 김기동 씨가 있다. 승현이는 주저 없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도 “우리 아버지 같이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기동 씨가 세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공부를 잘하거나 반장, 전교회장을 해서가 아니라 “어른들을 공경할 줄 알아서”다. “아이들이 어려서 남의 집 세 들어 살 때 주인집 할머니를 보면 열 번이면 열 번 다 깍듯이 인사를 해서 다들 예뻐하셨죠.” 어머니의 복순 씨가 귀띔해준다.

승현이네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 하나 있다. 한 달에 9만 원 독서실비가 너무 아깝다는 아이들의 요청으로, 칸막이 있는 독서실 책상을 집에 들여서 세 형제의 공부방을 만든 것이다. 승부욕 강한 둘째 성훈이가 한번 책상에 앉으면 꼼짝도 안 하는 탓에 형 승현이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단다. 그러니 막내 성준이도 꼼짝 못하고 책상에 붙어 있을 수밖에. 형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온 성훈이는 고등학교도 형이 다니는 학교를 1지망으로 택했다.

“엄마, 우리 집에 취재할 게 있어?” “오시는 건 괜찮은데 (기사) 쓸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기사가 되나요?” 어찌 된 일인지 이 가족, 취재 내내 기자를 더 걱정한다. 어쩌면 답은 멀리 있지 않았는지 모른다. 내 아이를 앞자리에 세우기에 앞서 뒷자리에 설 남의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전교회장 삼 형제를 키워낸 비결은 아니었을지. “내 아이만 생각하고 욕심 부리고 (엄마가) 개입하면 내 아이는 더 작아지더라고요.” 복순 씨의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이미지 확대


아빠 김기동(46세) : 마음이 정말 따뜻하고 자상하신 우리 아빠! 타인에 대한 배려, 나눔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학교 선생님 부럽지 않은 우리 집 인성교육 선생님.

엄마 이복순(45세) : 우리 집 홍일점. 우리 삼 형제와 아빠를 위해 항상 헌신하시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해주시는 내조의 여왕!

큰형 김승현(19세) :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우리 큰형. 리더십만큼은 인천 최강인 것 같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이기도 하다.

작은형 김성훈(17세) : 정말 끼가 많다. 운동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시샘을 많이 받는 형이지만 그래도 난 우리 작은형이 제일 좋다.

나 김성준(15세) : 우리 집 막내인 나는 성격이 활발하고 축구를 좋아하며 형들과 사이가 좋다. 형들과 엄마의 말을 잘 들어 성격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달의 가족 소개는 이 댁의 막내인 김성준 군이 해주었습니다.

글, 사진 이미현 기자

2010년 2월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출산'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모델 문가비가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결혼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산’은 바로 ‘결혼’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공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산’은 곧 ‘결혼’이며 가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출산’이 꼭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