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보여요!

나는 당신이 보여요!

입력 2010-03-21 00:00
업데이트 2010-03-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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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띄운 진주알 편지

어떤 스님의 추천으로 뉴욕의 가장 큰 아이맥스 영화관에 가서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어린아이가 된 듯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해파리처럼 날아다니는 신의 정령들, 환하게 불이 켜진 듯한 신단수 아래서 함께 올리는 제례, 공중에 떠 있는 산들, 만지면 작아지는 바닷속 산호초 같은 현란한 꽃들, 그리고 “나는 당신이 보여요!(I see you!)”라는 사랑의 고백…. 두 시간 반이나 되는 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저는 다가올 새로운 문명과 만나 그 속에 숨어 있는 신과 춤을 추는 기분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뉴욕의 강추위 속을 걸으면서도 마치 성령 충만한 예배를 경험하고 나온 사람처럼 가슴과 몸이 뜨거웠습니다. 다가오는 ‘오래된 미래’에 대한 기분 좋은 예감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묘한 뒷맛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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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인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지금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과한 칭찬과 지독한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가와 별개로 이런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영화의 에너지가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영화 평론가는 무성영화가 유성영화로 바뀐 것, 흑백영화가 색채영화로 바뀐 것과 맞먹을 정도로 영화사에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단지 평면영화가 입체영화로 바뀌어서가 아니라 영화의 기술적인 진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처럼 이 영화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아바타>가 <포카혼타스>나 <늑대와 춤을> 같은 영화처럼 백인 남자가 원주민 편에 서서 메시아처럼 그들을 구원한다는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적 식민지주의, 문화 제국주의로 가득 찬 할리우드의 진부하고 값싼 내용이라고 혹평합니다.

그들의 모든 칭찬과 비판에 다 일리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힘 있는 백인 남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상상력에 역사적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비판받아야 할 부분들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학자인 저는 그 영화에서 이런 평론가들이 이야기하는 면과는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신화적, 영적, 종교적 차원이었습니다. ‘아바타’란 원래 힌두교 용어입니다. 영원한 신 ‘브라마’의 현현으로 나타나는 존재, 즉 ‘비슈누’ 같은 존재를 아바타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아바타란 신이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컴퓨터 게임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을 아바타라고 부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에너지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들이 아바타가 됩니다.

그것이 현실의 세계에서 나타나든 가상의 세계에서 나타나든 그들은 우리를 우리 너머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여기서 가장 오래된 고대 신화의 세계와 첨단 과학, 컴퓨터의 세계가 만납니다. 결국 영혼의 세계든 물질의 세계든 깊이 들어가면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혼과 물질의 분리가 없는 세상, 우리가 지금 향해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바티칸에서는 아바타가 자연을 신의 자리로까지 끌어올려 예배하는 비기독교적인 영화라고 비판적인 성명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신을 끊임없이 창조를 가능케 하는 사랑의 에너지로 본다면, 자연 속에서 물질 속에서 떨리고 있는 그 기운을 우리는 찬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 제가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장면은 “나는 당신이 보여요!”라는 사랑 고백 장면이었습니다. 영어의 ‘See(보다)’라는 단어는 무엇인가가 눈에 보인다는 차원을 넘어 누군가를 깊이 알고 이해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안다’라는 말은 정신, 육체, 영혼, 성을 모두 포괄적으로 안다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창세기에 ‘아담이 이브를 아니’ 아이가 태어나는 겁니다. 틱낫한 스님은 이해는 사랑의 다른 말이라고 하시면서 이해 없는 사랑은 하면 할수록 사랑받는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I see you!”는 “I love you!”보다 훨씬 깊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영화 <아바타>는 누가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인공 제이크처럼 전쟁의 무의미함을 깊이 깨달은 상이군인, 전통적인 과학의 틀을 넘어 원주민의 앎에 마음을 열고 배우는 여성 과학자, 비윤리적인 상사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폭력적 체제 안에서 그것의 부당함을 보고 배반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면서, 신이 주는 사인을 감지하며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그 기를 운용할 줄 아는 판도라별의 원주민 ‘나비인’들…. 그들이 함께 새로운 문명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 문명에서 신은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신은 가장 좋은 조화와 균형을 향해 움직여가는 힘입니다. 그리고 자연은 조화가 크게 깨져갈 때 분연히 일어나 균형을 되찾습니다. 이 속에서 모든 존재는 아바타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깊은 신성이 새싹처럼 움트는 3월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현경 _ 기독교 신학자이며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의 종신교수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생태여성신학, 종교와 평화운동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 80여 나라를 다니면서 달라이 라마, 데즈먼드 투투, 머레드 맥과이어와 같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과 함께 종교 간 세계평화위원회의 자문으로 일한 여성·환경·평화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저서로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미래에서 온 편지> 등이 있습니다.

글 현경 | 그림 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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