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대 같은 삶 소재 신선, 식상한 반전에 재미와 ‘평행선’
경제학적으로 풀어보자. 사업 아이템이 좋다고 다 뜰 순 없다. 경영이 문제다. 회사를 운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십중팔구 망한다. 제 아무리 참신한 아이템도 미숙한 경영능력 앞에선 힘을 쓰지 못한다.영화라고 다를까. 독특한 소재라도 이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도루묵이다. 영화 첫 부분에서 ‘우와’라는 함성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뭐야, 저거.’란 야유를 듣게 된다면 아니함만 못하다. 신선한 소재를 식상하게 요리해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단 얘기다.
영화 ‘평행이론’의 아쉬움은 이 지점에서 나온다.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이 같은 삶을 반복해 산다는 ‘평행이론’은 무척 신선하다. 미스터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처음 본 소재다. 눈길을 끌 만하다. 영화의 시작도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접근한다. 링컨과 케네디의 사례다. 의원에 당선된 해는 각각 1846년과 1946년, 대통령에 당선된 해는 1860년과 1960년, 두 사람은 금요일에 각각 포드 극장과 포드 자동차에서 암살됐고, 암살범은 각각 1839년생과 1939년생이었다. 정확히 100년의 간격을 두고 비슷한 삶을 살아갔다는 것. 아, 이런 것도 있었구나, 재미있구나 칭찬해줄 만하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힘이 빠진다. 영화의 주된 골격은 서른여섯의 나이에 부장 판사에 오른 김석현(지진희 오른쪽)이 30년 전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았던 한상준 판사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예견된 죽음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거다. 하지만 식상한 반전, 뻔한 공포영화의 기법은 신선한 소재를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가 범인일지 관객들에게 추적을 원하는 식의 미스터리 공포물은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는 포맷이다. 평행이론도 이런 틀 그대로다. 김석현에 대한 수사기록이 없어진 상태에서, 과연 김석현을 죽이는 인물이 누구인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며 추론하도록 만들지만 결국 범인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이런 식의 미스터리 공포물에 이력이 난 관객들은 분명 의외의 인물이 나오길 기대했겠지만, 결과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예상 못한 결과가 아니라 예상하고 싶지 않은 결과였다.
또 하나. 성의 없는 공포 영화에서나 사용될 법한, 기분 나쁜 놀램이 여러번 사용된다는 것. 불길한 침묵과 불쾌한 음향효과…. 하지만 갑자기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식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이제 약발이 다해도 너무 다했다. ‘평행이론’이라는 희특한 아이디어, 암 투병 중인 배우 오현경의 투혼 말고는 눈에 띄는 게 별로 없었다. 15세 관람가.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2-1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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