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블로그] ‘천막’과 대권주자

[여의도 블로그] ‘천막’과 대권주자

입력 2010-12-14 00:00
수정 2010-12-1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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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의 새로운 수장으로 선출된 박근혜 대표는 여의도공원 맞은편 천막 당사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4·15 총선까지 불과 한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한나라당은 총체적인 위기였다. 2003년 10월 불법대선자금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차떼기 당’으로 몰렸다.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발의를 주도한 후과로 정치적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결국 최병렬 대표가 물러나면서 박 대표는 “부패·기득권 정당의 오명을 벗겠다.”고 선언했다. 취임 첫날 여의도 당사의 현판을 뜯어냈다. 명동성당과 조계사를 찾아 반성의 의미로 고해성사와 108배를 올렸다.

그해 4·15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었다. 50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박 대표는 2006년 7월 대표직을 물러날 때까지 수차례 재·보선에서 ‘박근혜’라는 단일 상품으로 승리를 일궜다.

박 대표는 ‘천막 정치’를 계기로 4대 개혁법안 반대 투쟁 등 진보 진영과 사활을 건 싸움을 벌였다. 그러면서 유력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2010년 12월 9일,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서울광장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단독 강행처리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이명박 독재 정권’과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오는 28일까지 전국을 돌며 천막 농성을 벌인다.

6년 전 한나라당의 천막 당사가 겹쳐진다. 박 전 대표의 ‘천막’은 민심의 심판에 사죄하려는 행위였다. 여의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당내 응집력이 높았다. 당 대표가 결단하면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는 정치 상황이었다.

반면 손 대표의 ‘천막’은 여권을 심판하려는 행위다. 여의도를 벗어났다. 당내 권력도 분산돼 있다. 야당 대표의 결단보다 정권과 여당이 결단해야 풀리는 정치 상황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겐 ‘천막’이 주는 공통점이 있다. 유력 대권주자의 시험대다. 박 전 대표가 천막 당사를 통해 리더십을 보여주고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듯, 손 대표도 비슷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다만 박 전 대표의 ‘천막’보다 지금 손 대표의 ‘천막’이 훨씬 좁고 어두운 건 사실이다. 대여 투쟁에 몰두할수록 내부 응집은 어렵다. ‘집토끼 리더’에 만족해야 한다. 행여 개인의 대선 행보에만 초점을 둔다면 야권 지도자로도 인정받기 어렵다. 야권 연대를 압박하는 다른 야당이 지켜보고 있다.

찬바람 몰아치는 서울광장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손 대표의 ‘천막’이 예산 국회를 정리하는 ‘송구영신’의 보금자리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당과 야권을 아우르는 리더십 탄생의 교두보가 될 것인지.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2010-12-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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