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에 학사모 쓴 박홍배씨
“20년전 먼저 간 아내가 가장 좋아할 것 같습니다.”
연합뉴스

박홍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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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38년간의 국가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한 박씨는 퇴직과 함께 틈틈이 써왔던 시들을 모아 자비로 시집을 낼 만큼 시를 좋아했다. 퇴직 후 고향인 충남 당진에서 강원도로 내려가 화전민촌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고 책도 읽으려고 했지만 혼자 하는 공부라서인지 생각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
고민 끝에 2008년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한 그는 매 학기 9개 이상의 과목을 수강하거나 청강할 만큼 ‘열공’했고, 드디어 졸업장을 받게 됐다.
1989년 국립농산물검사소 제주지소장을 지낸 그는 1년 반 정도 머무를 당시 좋은 기억을 선물했던 제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2년 내내 기숙사에서 살며 아들이나 손자뻘인 학생들과 같은 방을 썼다는 그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책을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이해하는 속도가 뒤떨어져 교수님 질문에 순발력 있게 대답하지 못하고 자주 뒷북을 쳤다.”며 웃었다.
그는 “공부에도 때와 시기가 있는데 머리가 흰 사람이 맨 앞자리에서 앉아 있다 보면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에게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며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 자유분방하게 이것저것 공부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씨와 함께 공부했던 양원혁(25)씨는 “처음엔 교수님인 줄 알았고 젊은 학생들도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텐데 과연 하실 수 있을지 하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라며 “권위적인 모습이라곤 전혀 없이 늘 겸손하게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2010-02-2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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