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4명꼴 낙태로 3명 죽어

신생아 4명꼴 낙태로 3명 죽어

입력 2010-03-01 00:00
수정 2010-03-0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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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경시 ‘낙태’ 근절 해법 찾아야

 우리나라가 ‘낙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은 과거의 인구억제 정책에 따라 인공 임신중절을 크게 죄악시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뿌리깊게 자리잡아온데다 인터넷 등 대중매체의 보급으로 성접촉이 증가하면서 낙태는 원치않는 임신을 중단하는 손쉬운 방안이 돼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생명에 대한 철학.윤리.의학적 논쟁을 포괄하고 있는 낙태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의 위기와 맞물려 일부 의사들이 불법 낙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동료의사를 고발하면서 본격적인 사회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낙태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모아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간 34만건 낙태 시술=지금까지 낙태에 대한 조사결과는 보건복지가족부와 고려대 의대가 2005년 실시한 ‘인공 임신중절 실태 조사’가 유일하다.

 당시 조사에서는 연간 34만2천건의 인공임신중절 시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같은 기간 태어나는 신생아는 44만명으로 태아 4명이 태어나는 사이 태아 3명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채 생명을 잃는 셈이다.

 낙태 시술 가운데 1만4천900여건(4.4%)만이 유전질환 등 법적인 허용조건을 갖췄고 나머지 33만건은 불법시술인 것으로 나타났다.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은 기혼이 19만8천건(58%),미혼이 14만4천건(42%)였으며 10대는 3.5%를 차지했다.

 낙태의 이유로는 기혼여성은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가 70%로 가장 많았고 경제적인 어려움 17.5%,임신중 약물복용 12.6% 순이었고 미혼여성은 미혼,또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93.7%를 차지했다.

 하지만 낙태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조짐도 보인다.

 지난해엔 연세대 의대가 산부인과 206개소를 대상으로 2개월간 낙태 시술 건수를 조사했더니 2005년에는 2개월간 평균 24.6건의 낙태 시술이 행해졌던 것에서 2008년에는 18.6건으로 24.4%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태아도 생명’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낙태 반대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작년 12월 가임기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조사에선 전체 응답자의 57.9%가 인공임신중절이 태아를 죽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80.8%가 인공 임신중절의 형법 처벌규정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다.

 ◇‘불법낙태 만연’ 원인은=불법 낙태는 누구 하나를 주범으로 몰기가 힘든,우리 사회 부조리의 총아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피임 및 성교육으로 인해 가임기 남녀 모두 피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다 책임있는 성관계를 회피하는 풍조를 원인으로 들기도 하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상업화의 영향으로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것도 그 배경이 된다.

 여기에 자녀양육이 힘든 사회.경제적 환경과 함께 낙태 시술을 해야만 병원 경영이 유지되는 산부인과의 열악한 환경 또한 원인으로 제시된다.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어 단시일내 해답을 내놓기는 어렵다.더욱이 낙태 찬반에 대한 시각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낙태시술 관련 산부인과 3곳을 고발한 프로라이프 의사회 최안나 대변인은 “그동안 하루 1천명 이상의 태아가 불법 낙태되는 것을 방치해왔다”며 “사회적 논란에서 벗어나 이제는 생명존중 사회를 만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성계는 낙태반대론을 “여성의 몸과 자율권을 통제하려는 반인권적인 발상”이라고 공박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국내 불법낙태 가운데 90% 이상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발생하는 만큼 사회적 여건이 변하지 않는 한 낙태는 근절될 수 없다”며 “무면허 시술이 음성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흡한 정부 대책=국가정책조정위원회는 복지부 대책을 보고받고서 내년으로 예정돼 있던 낙태 실태조사를 올 상반기중 착수하라고 했다.그만큼 낙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복지부의 종합계획에는 특단의 대책이 포함돼 있지는 않다는 게 중평이다.

 종합계획은 낙태근절을 위한 사회협의체를 구성,사회협약을 추진하고 10∼20대의 피임실천율을 높이는 한편 비혼(非婚) 한부모의 자립을 지원하고 불법 낙태 시술기관에 대한 신고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원희 복지부 가족건강과장은 “이번 계획은 기본적으로 생명존중 대책”이라며 “정부는 낙태 발생 전에 피임과 성교육을 적극 실시토록 하고 미혼모가 발생하면 자립을 지원해주는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최안나 프로라이프 대변인은 이에 대해 “5년만에 나온 정부의 종합대책인데도 낙태를 얼마나 줄이겠다는 목표조차 설정돼 있지 않다”며 “한마디로 단속도,지원도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최 대변인은 “낙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혼모들의 낙태를 줄이고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이 전무하다”며 “심지어 한부모 자립지원책도 이미 발표됐던 내용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 정도면 종전처럼 해도 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현재 낙태 문제는 논의를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며 분만수가 현실화,분만인프라 지역불균형 개선 등 각론의 대책이 쏟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최희주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이번 종합계획은 지난 3개월간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낙태 문제를 사회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담았으며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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