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에 무너진 1세대 쇼트트랙 스타

승부조작에 무너진 1세대 쇼트트랙 스타

입력 2010-12-24 00:00
수정 2010-12-2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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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5년 우리나라 쇼트트랙 대표팀 출범과 함께한 1세대 쇼트트랙 영웅이었다. 하지만 화려했던 그의 쇼트트랙 경력은 승부 조작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지난 4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정수와 곽윤기의 승부조작으로 빙상연맹 임원이 대거 사퇴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고질적인 빙상스포츠 ‘짬짜미’ 사례가 또다시 불거졌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 개인코치 이모(45)씨는 올 2월 중순쯤 다른 개인코치 13명과 서울 방이동 대한빙상경기연맹 근처 커피숍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곧 열릴 ‘제5회 성남시장배 전국 남녀 중·고교 쇼트트랙 스케이팅대회’ 남자 고등부 경기에서 저학년 선수들은 예선전에서 탈락시키고 전국대회 입상 경력이 부족한 3학년 선수들을 결승에 진출시키자.”고 공모했다. 일부 코치들이 “비밀이 지켜지겠나.”라고 우려하자 이씨는 “경기 중 밀거나 넘어뜨려 부상을 입히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입상 대상자 11명이 선정됐다.

그는 “비밀을 유지하라.”며 참석한 코치들이 서명한 각서까지 받았다. 그 정도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이들은 대회 당일인 3월 6일 오전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 앞 잔디밭에서 다시 모여 “선수들끼리 순위 다툼으로 충돌해 실격할 수 있으니 아예 ‘가위·바위·보’로 순위를 정하자.”고 모의하기도 했다.

경기 결과 공모한 대로 11명이 1~3위를 고르게 차지했다. 하지만 일부 선수와 학부모가 “이상하다.”며 경찰에 제보, 승부조작이 들통났다. 경찰 조사에서 다른 코치들은 “담당 학생들이 대학에 못 가면 군입대 등으로 운동을 포기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 선수층이 얇아질까 봐 공모했다.”고 진술했다. 일부 심판도 “(승부조작을) 알면서도 증거가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수치스러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정작 승부조작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먼저 대학 쪽 코치가 요구해서 의견을 조율했다. 가위·바위·보를 했다느니, 협박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선배고 경력도 있어 모두 내가 주도한 것처럼 입을 맞추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씨는 1988년 2월 캘거리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3000m에서 금메달을 따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우리나라가 쇼트트랙 대표팀을 꾸린 지 불과 3년 만에 올린 쾌거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승부조작을 주도한 이씨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다른 코치 13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또 수사 결과를 성남시와 대한체육회에 통보했다. 불구속 입건된 코치 중 현재 쇼트트랙 국가대표를 지도하고 있는 코치 한명은 이날 빙상연맹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정현용·김소라기자 junghy77@seoul.co.kr
2010-12-2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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