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자라는 남자애들을 한끼 1천70원으로 먹이라니 예산 책정한 사람한테 묻고 싶어요.’ 당신 자식도 3천원으로 세끼를 먹일 거냐‘라고.”
소년원을 출소한 10대 남자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청소년의 집‘을 2년째 후원하는 최성돈(53)씨의 분통 섞인 목소리다.
서울 은평구 주택가의 낡은 집 한 채.정식 명칭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서부지소 청소년의 집이지만 이웃 주민들이 쫓아낼까봐 간판 하나 없는 이곳에는 근년에 보기 드문 세밑 한파 탓인지 유난히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15년 전 문을 연 이후 연간 50명 안팎이 거쳐 가는데 지금은 만 14세∼19세 남자 청소년 열다섯 명이 함께 살고 있단다.
유병선(50) 소장은 26일 “고아이거나 부모가 돌보지 않아 출소 후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이 온다”라며 “가두는 곳이 아니기에 미리 말만 하면 외출과 외박이 자유롭고 빨래와 청소를 나눠 하는 등 ’가정집‘ 분위기를 내고자 노력한다”라고 소개했다.
실제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여느 가정집 아이와 다름 없이 장난기 많고 쾌활했다.
하지만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라는 질문에는 마치 누군가 물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춥고 배고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놀랍게도 이 아이들에게 지원되는 정부예산은 하루 식비 3천200원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마저 수용인원 중 열 한 명에 대해서만 식비 3천200원에 365일을 곱하고,매일 세끼를 다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0.6을 곱한 금액 770만원이 연간 국가가 지원하는 식비란다.
현실을 보자면 열다섯 명의 아이들은 한 끼 식사에 각자 공깃밥 서너 개씩을 먹어 하루 쌀 10㎏을 소비하고,밤에 야식으로 라면을 끓이면 40개들이 한 상자를 먹어치운다.
또 점심을 주로 밖에서 먹는 성인 출소자들과 달리 이들은 세끼를 거의 숙소에서 해결한다.
유 소장은 ’부족한 식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라는 질문에 한숨부터 쉬었다.
“소장의 역량에 달린 거라 발로 뛰는 수밖에 없어요.여기저기 부지런히 다니며 후원금과 쌀,김치,반찬을 얻어서 먹이는데 거지나 다름없죠”라며 “그래도 이삼일 걸러 고기반찬 해주고 한 끼에 3천원어치 식사는 되도록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식비와 마찬가지로 연간 9명(적정인원)에 한해서만 처음 입소 때 한 차례 10만원의 보조금이 나오고 일체의 용돈이나 개인 지원금은 없다.
아이들이 서류상으로는 대개 부모가 있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도 지정되지 못하는 ’청소년의 집‘은 명색이 법무부 산하 기관인데다 출소자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 지자체나 민간단체의 예산지원이 닿지 않는 이른바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아이들은 양말,속옷 같은 생필품부터 차비,간식비까지 모두 벌어 써야 하고 만 20세가 되면 독립해야 하기에 학업 대신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현재 입소자 중 세 명만 중학교에 다니고 나머지는 편의점,주유소,치킨 배달,막노동까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운전면허증,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출소한 지 1년 된 김모(18)군은 “벽돌 나르기부터 배추장사,가구배달까지 다 해봤는데 미성년자이고 주소가 ’청소년의 집‘이라고 하면 아르바이트도 잘 안 시켜줘요”라며 “인생살이가 참 고달프네요”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육사가 꿈이라는 이모(14)군은 “아홉 달 만에 학교에 가니까 좋아요.아직 같은 반 친구들이 ’청소년의 집‘에 사는 거 모르는데,물어보면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형들의 입에서 “너희 반에서 뭐 없어지면 너부터 의심하니까 말하지 않는 게 좋을걸”이라는 반응이 튀어나왔다.아픈 경험에서 터득된 ’그들만의 지혜‘였던 셈이다.
올여름부터 청소년의 집에 머물며 아이들을 돕는 동국대 법학과 김영정(25)씨는 “처음에는 범죄자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지내보니 말이나 행동이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 다른 동생들과 다름없고 오히려 더 솔직하고 순수하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청소년의 집에 들어오고 나서도 몇 달씩 자취를 감추거나 종종 폭행,절도사건에 다시 휘말린다.그래서 이곳에서는 만 20세 생일이 될 때까지 탈 없이 지내다가 군대에 가는 것을 가장 잘 풀리는 경우로 본다고 한다.
유 소장은 “애들 배불리 먹이고 적정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하는 게 소망”이라며 “직업훈련을 시켜서 독립시키는 게 최선인데 위탁교육을 하면 일반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우리 아이들만을 위한 교육센터가 따로 있었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을 털어놨다.
연합뉴스
소년원을 출소한 10대 남자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청소년의 집‘을 2년째 후원하는 최성돈(53)씨의 분통 섞인 목소리다.
서울 은평구 주택가의 낡은 집 한 채.정식 명칭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서부지소 청소년의 집이지만 이웃 주민들이 쫓아낼까봐 간판 하나 없는 이곳에는 근년에 보기 드문 세밑 한파 탓인지 유난히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당신 자식도 3천원으로 세끼 먹일텐가?”
서울 은평구 주택가의 낡은 집 한 채. 정식 명칭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서부지소 ‘청소년의 집’이지만 이웃 주민들이 쫓아낼까봐 간판 하나 달지 못했다. 소년원 출소 후 의지할 곳 없는 10대를 위해 15년 전 문을 연 이곳에는 연간 50명 안팎이 거쳐 가는데 지금은 만 14세∼19세 남자 청소년 열다섯 명이 함께 살고 있다.놀랍게도 이 아이들에게 지원되는 정부예산은 하루 식비 3천200원이 전부나 다름없다.
연합뉴스
서울 은평구 주택가의 낡은 집 한 채. 정식 명칭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서부지소 ‘청소년의 집’이지만 이웃 주민들이 쫓아낼까봐 간판 하나 달지 못했다. 소년원 출소 후 의지할 곳 없는 10대를 위해 15년 전 문을 연 이곳에는 연간 50명 안팎이 거쳐 가는데 지금은 만 14세∼19세 남자 청소년 열다섯 명이 함께 살고 있다.놀랍게도 이 아이들에게 지원되는 정부예산은 하루 식비 3천200원이 전부나 다름없다.
연합뉴스
유병선(50) 소장은 26일 “고아이거나 부모가 돌보지 않아 출소 후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이 온다”라며 “가두는 곳이 아니기에 미리 말만 하면 외출과 외박이 자유롭고 빨래와 청소를 나눠 하는 등 ’가정집‘ 분위기를 내고자 노력한다”라고 소개했다.
실제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여느 가정집 아이와 다름 없이 장난기 많고 쾌활했다.
하지만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라는 질문에는 마치 누군가 물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춥고 배고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놀랍게도 이 아이들에게 지원되는 정부예산은 하루 식비 3천200원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마저 수용인원 중 열 한 명에 대해서만 식비 3천200원에 365일을 곱하고,매일 세끼를 다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0.6을 곱한 금액 770만원이 연간 국가가 지원하는 식비란다.
현실을 보자면 열다섯 명의 아이들은 한 끼 식사에 각자 공깃밥 서너 개씩을 먹어 하루 쌀 10㎏을 소비하고,밤에 야식으로 라면을 끓이면 40개들이 한 상자를 먹어치운다.
또 점심을 주로 밖에서 먹는 성인 출소자들과 달리 이들은 세끼를 거의 숙소에서 해결한다.
유 소장은 ’부족한 식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라는 질문에 한숨부터 쉬었다.
“소장의 역량에 달린 거라 발로 뛰는 수밖에 없어요.여기저기 부지런히 다니며 후원금과 쌀,김치,반찬을 얻어서 먹이는데 거지나 다름없죠”라며 “그래도 이삼일 걸러 고기반찬 해주고 한 끼에 3천원어치 식사는 되도록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식비와 마찬가지로 연간 9명(적정인원)에 한해서만 처음 입소 때 한 차례 10만원의 보조금이 나오고 일체의 용돈이나 개인 지원금은 없다.
아이들이 서류상으로는 대개 부모가 있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도 지정되지 못하는 ’청소년의 집‘은 명색이 법무부 산하 기관인데다 출소자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 지자체나 민간단체의 예산지원이 닿지 않는 이른바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아이들은 양말,속옷 같은 생필품부터 차비,간식비까지 모두 벌어 써야 하고 만 20세가 되면 독립해야 하기에 학업 대신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현재 입소자 중 세 명만 중학교에 다니고 나머지는 편의점,주유소,치킨 배달,막노동까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운전면허증,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출소한 지 1년 된 김모(18)군은 “벽돌 나르기부터 배추장사,가구배달까지 다 해봤는데 미성년자이고 주소가 ’청소년의 집‘이라고 하면 아르바이트도 잘 안 시켜줘요”라며 “인생살이가 참 고달프네요”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육사가 꿈이라는 이모(14)군은 “아홉 달 만에 학교에 가니까 좋아요.아직 같은 반 친구들이 ’청소년의 집‘에 사는 거 모르는데,물어보면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형들의 입에서 “너희 반에서 뭐 없어지면 너부터 의심하니까 말하지 않는 게 좋을걸”이라는 반응이 튀어나왔다.아픈 경험에서 터득된 ’그들만의 지혜‘였던 셈이다.
올여름부터 청소년의 집에 머물며 아이들을 돕는 동국대 법학과 김영정(25)씨는 “처음에는 범죄자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지내보니 말이나 행동이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 다른 동생들과 다름없고 오히려 더 솔직하고 순수하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청소년의 집에 들어오고 나서도 몇 달씩 자취를 감추거나 종종 폭행,절도사건에 다시 휘말린다.그래서 이곳에서는 만 20세 생일이 될 때까지 탈 없이 지내다가 군대에 가는 것을 가장 잘 풀리는 경우로 본다고 한다.
유 소장은 “애들 배불리 먹이고 적정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하는 게 소망”이라며 “직업훈련을 시켜서 독립시키는 게 최선인데 위탁교육을 하면 일반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우리 아이들만을 위한 교육센터가 따로 있었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을 털어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