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차 촛불 총인원 1천만명 넘겨…풍자·평화 축제의 장으로 전세계 주목
“천년의 어둠도 촛불 한 개면 빛이 된다.”지난달 3일 6차 주말 촛불집회 때 가수 한영애가 한 말이다. 이처럼 촛불 단 한 개에도 어둠이 결코 이길 수 없는 힘이 있다. 2016년 광장에는 그런 촛불이 지금껏 천만 개가 켜졌다.
1일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따르면 지난 열 차례 촛불집회 동안 전국에 모인 연인원은 총 1천3만1천870명이다.
서울에만 808만개, 지방에선 195만1천870개의 촛불이 광장을 다녀갔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연속 시위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정확한 규모가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연인원이 300만∼500만명이었을 것으로 전해진다. 2016년 ‘촛불 항쟁’은 새 역사를 썼다.
◇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분노’, 광장민주주의 ‘축제’로 해갈
‘분노’로 점화된 촛불은 ‘변화’를 직접 만들었고, 새해에 희망을 거는 ‘축제’가 됐다.
작년 10월 29일 1차 촛불에 3만명이 모이자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4일 ‘최순실 게이트’ 연루를 사실상 부인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고, 촛불 인원은 삽시간에 20만명(2차)에 이어 100만명(3차)으로 불어났다.
5차 촛불에 전국 190만명이 모였음에도 박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에 미루고,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꺼냈다.
그러자 지난달 3일 6차 촛불에 서울 170만명, 전국 232만명의 촛불이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대통령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광화문과 여의도를 가득 메웠다.
촛불은 끝내 지난달 9일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AP통신은 다음날 열린 7차 촛불을 전하면서 “(한국) 시민들은 자부심이 넘쳤고, 망가진 민주주의를 대규모 집회로 손수 바로잡았다고 믿는 모습이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7∼10차 촛불은 폭죽이 등장할 만큼 축제 분위기였다. 시민들은 대의민주주의에 쌓인 불신을 광장민주주의로 해갈했다. 또 촛불은 헌법재판소 앞으로도 향해 국민의 목소리를 전했다.
전날 10차 촛불집회에서 주최 측이 그간의 연인원이 천만명에 달함을 발표하자,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 수백명 일제히 폭죽을 터뜨렸다.
요란하고 번쩍이는 폭죽이 그간의 광장을 묵묵히 내려다본 2016년 마지막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 성숙한 평화·유쾌한 풍자 가득…연령대·주제 점점 다양해져
대한민국 광장을 메운 2016년 1∼10차 촛불집회는 ‘평화’와 ‘풍자’로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한정된 공간에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백만명의 인원이 모였음에도 시민들 사이에는 물론 경찰과도 별다른 마찰 없이 평화집회가 계속됐다.
법원도 “수차례 집회와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평화집회·행진이 가능함을 증명했다”며 헌정사상 첫 청와대 앞 100m 앞 대규모 집회 및 행진을 허용했다.
‘한국곰국학회’, ‘만두노총’과 같은 풍자 깃발들은 평소 운동권이나 시위에 관심이 없던 평범한 시민들조차도 현 세태에 분노를 느끼고 광장에 나왔음을 상징했다.
평화로운 촛불과 유쾌한 풍자가 광장에 들어차자, 적극적인 부모들은 광장을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육의 산실’로 만들기도 했다.
부모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나와 함께 촛불을 쥐고 대통령과 정치권의 잘못에 관해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이제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광장 곳곳의 자유발언대에서는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도 마이크를 쥐고 광장민주주의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더불어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과 세월호 참사 등 이슈도 광장에서 재주목받으면서, 시민들은 촛불이 거듭될 수록 논의의 장을 넓혀 나갔다.
◇ 대통령 옹호·보수주의 세력도 태극기 들고 ‘애국·안보’ 외쳐
광장에는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고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도 조금씩 늘어났다.
박사모 등 친박단체와 보수단체들은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를 꾸리고 ‘태극기 집회’ 세를 키웠다.
전날인 지난달 31일에는 주최 측 추산 72만명, 경찰 추산(일시점 최다 인원) 1만3천명이 모이기도 했다.
이들은 광장 한편에서 ‘송구영신’(送舊迎新) 대신 ‘송화영태’(送火迎太, 촛불을 보내고 태극기을 맞아들임)를 외쳤고, 애국가와 군가를 부르며 ‘애국’과 ‘안보’를 논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