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알 권리 보장·의사의 도덕적 의무 강화 등에 초점 맞춰질 듯
#1. 서울 소재 대학병원 산부인과 A 교수는 본인 담당으로 예약돼 있던 난소암 수술 등 수술 3건을 후배 의사에게 맡기고 해외 학회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했다.A교수는 이를 환자나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았으나, 나중에 병원 내부 관계자에 의해 이런 사실이 폭로됐다.
A교수가 수술을 집도하지 않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환자와 보호자는 뒤늦게 병원장과 A 교수로부터 사과를 받고 진료비와 특진비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폭로가 없었더라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뻔한 사건이었다.
#2. 인천 소재 대학병원 정형외과 B 교수는 ‘족부(발) 해부실습’에 참여해 실습에 참여한 의사 4명과 함께 해부용 시체를 앞에 두고 인증샷을 찍었다.
광주에 있는 한 재활병원 C 원장은 ‘토요일 카데바 워크숍’·‘매우 유익했던’·‘자극이 되고’라는 글까지 달아 인터넷에 이 사진을 올렸다.
네티즌들 사이에 ‘해부용 시체에 대한 예우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면서 논란이 커지자 보건복지부가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계속됐다.
이 두 사례는 각각 2016년 7월과 2017년 2월에 있었던 실제 사건이다. 의사의 윤리의식을 높이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사건들로 꼽힌다.
대한의사협회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의사윤리지침을 10년 만에 전면 개정하는 작업을 벌이는 가운데, 서울대 의대 김옥주 교수와 순천향대 박윤형 교수 등이 ‘한국 의사윤리지침 및 강령의 연혁과 개정내용’이라는 제하의 논문을 1일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지 최근호에 실린 이 논문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작업이 완료되는 의사윤리지침 개정안에 실릴 것으로 전망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큰 변화는 의학연구와 연관된 ‘생명윤리’ 분야가 줄고, 실제 환자 진료에서 해야 할 의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의료윤리’ 분야가 대폭 늘어나리라는 점이다.
먼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인간존중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 환자의 알 권리 ▲ 의사의 설명 의무 ▲ 환자의 의사 선택권 존중 등을 윤리지침에 신설하게 될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전망이다.
이는 ‘대리수술’ 관련 비판 여론에 대한 의료계의 대응으로 풀이된다.
또 연구진은 환자의 인격·사생활 존중과 환자 비밀 보호에 대한 지침이 새롭게 마련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1월 유명 연예인이 병원 응급실을 찾은 사실을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한 의사 2명이 병원 측으로부터 정직·감봉 등의 중징계를 받으면서 ‘환자 정보 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일기도 했다.
그 밖에 장기이식을 비롯해 의학연구에 있어 비윤리적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에 대한 금지를 명문화함으로써 의사의 도덕적 일탈 행위가 더 강하게 규제되리라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김옥주 교수는 새롭게 개정되는 의사윤리지침을 의료계 내부에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며 “의과대학 학생과 전공의 교육에 활용하고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는 훈련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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