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브런치] 헐리우드 ‘황금시대’, 여배우들에겐 ‘최악의 시대’

[사이언스 브런치] 헐리우드 ‘황금시대’, 여배우들에겐 ‘최악의 시대’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0-04-03 19:00
업데이트 2020-04-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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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50년대 헐리우드 영화산업에서 여성비율과 대우 최악...여전히 50% 이하

20세기 초 헐리우드 황금시대는 여성들에겐 ‘최악의 시대’
20세기 초 헐리우드 황금시대는 여성들에겐 ‘최악의 시대’ 1920~1950년대 다양한 장르의 고전적 영화가 쏟아져 나온 헐리우드 ‘황금시대’가 영화계에서 여성들에게는 최악의 시대였다는 복잡계 과학자들의 분석결과가 나왔다.
1939년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할을 했던 주디 갈란드(왼쪽)의 비극적 이야기는 당시 헐리우드의 이면을 보여준다. 영화 ‘주디’에서 주디 갈란드 역할을 한 르네 젤위거(오른쪽)는 올해 2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난 2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4개 부문을 휩쓴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올해 여우주연상은 영화 ‘주디’의 주연 르네 젤위거에게 돌아갔다. 주디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역을 맡아 ‘somewhere over the rainbow’라는 유명한 삽입곡을 불러 세계적인 스타가 된 주디 갈란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주디 갈란드는 체중조절을 이유로 하루 한끼만 먹고 영화 촬영을 위해 잠을 자지 못하도록 각성제를 강제 복용하기도 하고 스테프와 남자배우들에게서 수시로 폭언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일들이 줄어들었지만 몇 년 전 나탈리 포트먼이나 제니퍼 로렌스 등 헐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배우들이 똑같은 주연배우임에도 남녀간 출연료 차이가 크다며 남녀 출연자의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복잡계연구소, 화학생물공학과 공동연구팀은 1920년부터 1950년대까지 소위 ‘헐리우드 황금시대’라고 불렸던 시기에 여성배우들에게는 불평등한 구조로 가득한 ‘최악의 시대’였다고 3일 밝혔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2일자에 실렸다.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헐리우드를 떠올린다. 1910년 이전까지만해도 미국에서 영화의 중심지는 뉴욕과 시카고였다. 헐리우드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1920년대에는 지금 널리 알려진 ‘스튜디오 시스템’이 등장해 영화산업 표준모델로 자리잡게 된다.
최고의 클래식 영화 ‘카사블랑카’ 알고보니 최악의 영화?
최고의 클래식 영화 ‘카사블랑카’ 알고보니 최악의 영화?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는 헐리우드 최고의 고전영화로 평가받고 있지만 남성 제작자, 남성 감독, 3명의 남성 시나리오 작가,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제외하고는 주요 등장인물은 7명의 남자배우들이다. 연구팀은 헐리우드 황금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들 대부분이 이런 형태를 띄고 있다고 분석했다.
IMDb 제공
스튜디오 시스템은 영화에 투입되는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로케이션 촬영보다는 세트장에서 찍는 영화가 대세를 이루게 됐고 배우들도 겹치가 출연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게 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195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이 때를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부른다.

연구팀은 미국 영화연구소 아카이브와 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IMDb)에서 1910년부터 2010년까지 100여년 동안 제작된 액션, 어드벤처, 전기, 코미디, 범죄, 드라마, 다큐멘터리, 판타지, 느와르, 역사, 공포, 음악, 뮤지컬, 미스터리, 로맨스, SF, 스포츠, 스릴러, 전쟁, 서부영화, 단편영화까지 모든 장르의 2만 6000여편의 영화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들 영화에서 배우,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로 여성이 얼마나 많이 참여했는지에 특히 주목했다.

분석 결과 모든 장르와 네 개의 직업군에서 성별 분포는 정확히 U자형 그래프를 형성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922년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여성의 역할과 구성은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소수의 주요 영화제작사가 영화산업을 좌지우지했던 1950년대, 소위 헐리우드 황금시대 내내 지속된 것으로 조사됐다.
헐리우드 황금시대는 황금시대가 아니었다고?
헐리우드 황금시대는 황금시대가 아니었다고?
복잡계 과학자들이 20세기 전반 헐리우드 황금시대부터 현재까지 영화산업에서 성비불균형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내놨다. 분석에 따르면 헐리우드 황금시대에 여성의 역할과 규모는 최악이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복잡계연구소 제공
연구팀은 헐리우드 황금시대 이전에는 독립영화 제작사들에 의해 영화산업이 지탱되고 있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증가추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1910~1920년까지 여성배우는 전체 출연진의 40%를 차지했고 20%의 시나리오가 여성 작가들에게서 나왔으며 제작자의 12%, 감독의 5%가 여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1920년대 스튜디오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워너브러더스, 파라마운트, MGM, 폭스, RKO 픽처스 5개 대형제작사가 영화산업을 장악하면서 여성 연기자의 비율이나 역할도 1910년대와 비교해 절반 이하로 줄었고 제작과 연출은 거의 ‘0’에 수렴하는 등 영화산업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2번 수상하고 4번 후보로 올랐던 후보였던 1940년대 인기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1943년 워너브라더스의 노예계약에 소송을 걸어 승소한 이후 배우들은 스튜디오 전속계약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됐다.
헐리우드 황금시대를 끝낸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헐리우드 황금시대를 끝낸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올해로 103세를 맞는 헐리우드 황금시대 대표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여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언 리가 주연한 스칼렛 오하라와 대비되는 멜라니 역으로 열연을 했다. 1943년 워너브러더스의 노예계약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해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켜 헐리우드에서 여성의 지위를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P 제공
또 1948년 미국 연방정부가 독점금지 위반으로 파라마운트를 고소하고 승소를 하면서 스튜디오들이 영화를 독점제작해 배급, 상영할 수 없게 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이 스튜디오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켜 2010년까지는 여성들의 역할이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산업의 모든 역할에서 여성의 비율은 50%를 밑돌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 같은 여성의 역할이 줄어든 것에 대해 황금시대 당시 서부영화나 액션, 범죄, 느와르 영화가 늘어나 여성의 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연구팀은 이번 분석을 보면 뮤지컬, 코미디, 판타지, 로맨스를 포함해 모든 장르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다.

루이스 누네스 아마랄 교수(복잡계 사회·생물학)는 “헐리우드 황금시대에는 현란하고 화려하며 고전적인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장밋빛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라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당시 상황을 미시적으로 분석하면 절대 황금시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아마랄 교수는 “남성 제작자가 남자 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를 고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인과관계로 볼 수는 없지만 이 같은 분석결과는 매우 시사적”이라며 “영화산업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의 성별이 여성의 진출은 물론 영화의 다양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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